조사당의 건립은 조사들의 신앙이 강한 선종(禪宗)에서 먼저 시작된 것으로 보고 있다.
선종의 사찰에서는 고승들이 입적하면 사리탑인 부도(浮屠)를 건립하고 조사당을 지어 그 영정을 봉안하는 경우가 많았으며, 이것이 다른 종파에까지 전파되어, 큰 사찰에서는 대개의 경우 조사당을 갖추게 되었다.
선종의 사찰에서는 보통 인도와 중국의 조사인 33조사와 함께 고려의 보조국사(普照國師, 1158-1210) · 보우(普愚, 1515-1565) 등을 조사당에 모시게 되는데, 때로는 서산대사西山大師, 1520-1604) · 사명대사(泗溟大師, 1544-1610) 등의 영정을 봉안하기도 한다. 이 경우에는 그 절에 머물렀던 것과는 상관없이 조사의 뜻을 기리기 위하여 건립하는 조사당이다.
그러나 사찰에 따라서는 개산조만을 따로 모셔 개산조당(開山祖堂)이라 하는 경우가 있으며, 그 절을 창건, 중건, 주석(住錫)하였거나 수행한 고승들의 영정이나 위패를 모시고 봄 · 가을에 제향하는 곳을 영각(影閣)이라 하여 엄밀히 구별하기도 한다.
국가유산으로 지정된 것으로는 1962년 국보로 지정된 경상북도 영주시 부석면 부석사(浮石寺)의 조사당과 전라남도 순천시 송광면의 송광사 국사전(國師殿), 1963년 보물로 지정된 경기도 여주시 신륵사길(천송동) 신륵사(神勒寺) 조사당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