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고등농림학교 재학생인 우종휘(禹鍾徽)·김찬도(金燦道)·권영선(權永善) 등이 중심이 되어 1926년 농촌개발을 목적으로 설립되었던 계림흥농사(鷄林興農社)를 확대, 개편하여 1928년 항일독립운동의 중심기관인 조선개척사를 설립하였다.
이 단체는 일제의 탄압을 피하기 위하여 표면상 합법단체를 가장한 항일비밀결사로, 국내외에서 활동하고 있는 농학도들을 결속하여 전국적으로 협동농장을 건설하고 농업기술향상, 농촌문화 및 경제향상을 꾀함으로써 이상적인 농촌건설을 표방하고 있다.
그렇지만 우리 민족의 실력향상을 꾀하여 항일운동의 기반을 조성하며 학생들에게 항일의식을 고취하고 조직을 강화시켜 일단 유사시에 봉기할 것을 결의하였다.
그러나 1928년 9월 동 결사가 일본경찰에게 발각됨으로써 주동자 11명이 퇴학처분을 받고 기소되었다. 이에 항의하여 동교 한국인 재학생 44명이 자진 퇴학원을 제출함으로써 사건이 확대되었다.
그 뒤 주동자로 김찬도·권영선만 재판에 회부되었으며 다른 사람은 면소되었다. 수원고등농림학교의 조선개척사 사건은 당시 국내에서 조직되었던 전문학교급의 비밀결사로서는 최대의 규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