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박물연구회

  • 과학
  • 단체
  • 일제강점기
1933년 동식물에 관한 연구를 위하여 설립되었던 학술단체.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현원복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정의

1933년 동식물에 관한 연구를 위하여 설립되었던 학술단체.

내용

이덕봉(李德鳳)·정태현(鄭台鉉)·박만규(朴萬圭)·장형두(張亨斗)·석주명(石宙明) 등 박물교원(생물학 교사)과 동식물학 전공자가 회합하여 서울에서 조직하였다. 이들은 첫 사업으로 서울 휘문고등보통학교 강당에서 우리나라에서는 처음으로 대규모의 동식물전시회를 열어 많은 학생들이 참관하였다.

이 전시회를 계기로 연구회원들은 우리말로 통일된 식물이름이 필요하다는 것을 절감하게 되어 식물이름붙이기 연구에 착수하였다. 이덕봉·정태현·도봉섭(都逢涉)·이휘재(李徽載) 등이 중심이 되어 시작한 이 사업은 2년 만에 2,000여 종의 식물이름을 체계적으로 집대성하여 1937년 『조선식물향명집(朝鮮植物鄕名集)』으로 펴냈다. 이것은 우리나라 사람의 손으로 식물을 현대과학적인 방법에 따라 배열하고, 또 우리나라 식물의 표준명을 정한 최초의 일이었다.

조선박물연구회는 일제시대에 일본인들이 중심이 되어 조직된 조선박물학회와는 달리 우리나라 동식물학자들로만 구성된 단체였다는 데 의의가 있다고 하겠다. 이 연구회는 1945년 광복 후 박물교원연구회 등과 합쳐서 조선생물학회로 새로 출발하게 되었으며, 정부수립 후 다시 한국생물학회로 이름을 바꾼 뒤 식물학회와 동물학회로 나누어져 한국생물과학협회가 총괄하게 되었다.

참고문헌

  • - 『한국과학기술30년사』(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 1980)

  • - 「원로과학자(元老科學者)의 증언(證言) 5 -이덕봉박사편(李德鳳博士篇)-」(『과학기술』12-12,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 1979)

  • - 「최근세 한국 식물학 연구사 –일제통치하 한국에 있어서의 식물학 연구에 관한 시설과 그 실태-」(이덕봉, 『아세아연구』 8, 19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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