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미국 등지에서 10여 년간 유학을 하고 귀국한 뒤 배화여학교 사감으로 재직하고 있던 차미리사(車美理士)는 문맹여성들에게 글을 가르치고 소박데기여성에게 신생활방법과 정신을 가르쳐야 한다는 절실한 생각으로 1919년 9월 종교예배당 종집을 빌려 여자야학을 시작하였으며, 부녀대중교육을 확대하여야 한다는 생각에 이 협회를 조직하였다.
이 협회는 야학에 열성적이었던 신봉조(辛鳳祚)의 제의에 따라 전국순회강연단을 조직하여 1921년 6월 10일부터 10월 10일까지 4개월간에 걸쳐 13도의 73개소를 순회하면서 계몽강연회를 개최하였다.
이 순회강연회는 우리나라 부인계몽운동의 첫 횃불이 되었으며, 이에 참여한 단원은 김선(金善)·이은(李銀)·백옥복(白玉福)·허정숙(許貞淑)·김순복(金順福)·김은수(金恩洙) 등이었다. 이 강연회는 지방여성의 각성은 물론 사회전반을 계몽시키는 데 크게 공헌하였다.
내외(內外)를 위하여 여자가 쓰던 삿갓을 벗게 하였고 소박맞은 지방여성들이 비탄을 딛고 서울유학을 하기도 하였다. 이 협회의 여성계몽운동은 학령초과, 미혼 및 기혼부인에게 교육의 기회를 열어줄 여학교 설립을 도모하게 하였으며, 그 결과 1921년 10월에는 근화학원(槿花學園)이 설립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