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의 경제적 이윤을 목적으로 창립된 단체로, 서석전(徐石田) 등에 의하여 조직되었던 경성여자소비조합이 1년 만에 없어지자 이에 아쉬움을 느꼈던 200여 명의 부인들이 1933년 1월 14일 조선여자소비조합을 새로 창립하였다.
조합은 김이수(金尼洙)의 집에 본부를 두고, 왕십리에 지부를 두었으며, 회원수는 350여 명(1933년 현재)이었다. 조합 내 기구로는 화장품·약품·염료부, 잡화식료품부, 실비치료부의 3부서를 두었다.
이 조합은 가정 소비필수품의 최저가 공급과 회원에 대한 이윤배당을 목적으로 매월말에 조합 이용고(利用高)에 대한 잉여금을 회원에게 배당하였으며, 생활능력이 없는 조합원의 생계 마련을 위하여 재봉부·염색부·세탁부·장제조부 등을 두어 이 분야에 대한 전문직업인 지도와 수입원을 알선하였다.
재봉부 성적이 가장 좋아 침모의 월수입이 15원 가량이었다. 장담그기와 김장 등도 조합원끼리 공동구입, 제조하여 분배할 계획 등을 세우기도 하였다. 또한 야학을 설립하여 조합원에 대한 교양교육을 꾀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