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방약상을 하는 이선홍(李善洪)이 1922년 7월 24일 대판에서 친목단체를 표방하고 결성했다. 1923년 5월부터는 재판조선인친목회(在阪朝鮮人親睦會) 부간사를 지냈던 신태균이 총본부의 회장 겸 총무로 활동했다.
조선인협회의 취지와 목적은 ‘조선인 동포의 친목 도모, 상구상조, 각자 생활의 안정, 인격 함양, 지식계발’이고 주요 활동은 실업자의 인사 상담이다. 그 외 활동 내용으로는 천황이 대판에 행차함에 즈음해 실시한 육군특별대연습을 기념하는 사업의 일환으로 내선융화 증가주가오랑극(曾家酒家五郞劇)을 연 것과 기념회관 건설을 시도한 정도이다.
이 단체는 1925년 일본당국에 의해 내선동화에 힘쓰는 단체로서 상애회와 같은 범주로 구분되었다. 이 단체는 1922년 12월 대판조선노동동맹회 결성에 영향력을 행사했으며, 1920년대 대판지역의 대표적인 친일단체로서 자리했다. 조선인협회는 1932년 10월에 대판조선인협회 총본부로 개칭하고 산하에 삼국(三國), 금궁(今宮), 서야전(西野田), 풍기(豊崎)지부 등 4개 지부를 설치했다.
1933년 내무성과 척무성(拓務省) 및 조선총독부가 재일조선인에 대한 지도강화 및 동화정책의 철저를 협의한 후 그 내용은 그 해 10월 각의에서 결정되었다. 이 결정에 따라 조선인이 다수 거주하는 대판 지역에서는 1934년 4월 내선융화사업조사회가 설치되어 본격적인 조사연구를 행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 답신에 의해 1935년 10월에는 대판부내선협화회(大阪府內鮮協和會)가 대판부협화회(大阪府協和會, 회장은 부지사)로 개칭되었다. 또한 1936년 2월 부터 대판 지역의 각 경찰서에 서장을 회장으로 하는 교풍회(矯風會)가 설치되면서 친일융화단체의 간부들은 교풍회지도원으로 등용되어 동화정책 및 황민화정책 수행, 각종 국책운동, 협화회 행사에 동원을 독려했다.
일본 정부가 1936년부터 협화사업의 명목으로 예산을 배정하면서 협화회 사무는 내무성 사회국이 담당하게 되었다. 그 결과 지방행정청에 협화회 설립을 장려했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1938년 11월 중앙협화회창립발기인대회가 열려 귀족원의장이 이사장에 취임했다. 협화회가 설립되자 조선인협회를 비롯한 대판 지역의 친일융화단체는 자연 소멸되고 상애회 대판본부만이 남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