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풍양(豊壤). 자는 국로(國老). 조구(趙龜)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조계팽(趙季砰)이고, 아버지는 조지부(趙之孚)이며, 어머니는 군자감판관 조휘(曺彙)의 딸이다.
1473년(성종 4)에 서학유생(西學儒生)으로 월과부제(月課賦題)를 짓지 않을 뿐만 아니라 사장(師長) 앞에서 정읍(庭揖)을 하지 않아 사장을 능모(凌侮)하고 풍속을 파괴시켰다는 죄명으로 장(杖) 100에 처하여졌다.
1492년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1504년(연산군 10) 지평으로서 여러 대간들과 함께 정침(鄭沈)의 가자에 대하여 탄박(彈駁)하는 소를 올렸는데, 상소에 정침의 이름은 없고 분집문안(坌集問安)의 말만 있는 것은 임금을 의심하는 말이라는 죄명으로 의금부에서 국문을 당하고 장 80에 처하여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