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 후기에, 『유석명분변』, 『운교문답』 등을 저술한 학자.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1765년(영조 41) 이상정(李象靖)·김낙행(金樂行)의 문하에 입문하고, 김종덕(金宗德)·유장원(柳長源)·이종수(李宗洙)·정종로(鄭宗魯)와 학문을 토론하였다. 1776년에는 월록서당(月麓書堂)을 지어 후학들을 지도하고 ‘만곡(晩谷)’으로 자호하였다.
조술도는 조부 조덕린의 신원운동을 위해 수차례 서울을 왕래했으며, 당시 남인의 영수 채제공과도 자주 접촉하였다. 그 결과 1789년(정조 13)에는 신원운동이 성사되고 채제공과의 관계도 더욱 밀접해졌다.
조술도는 유학의 가르침에 충실해 서학(西學)·노장(老莊)에 대해서는 매우 엄정한 입장을 취했으며, 일생 사서(四書)·『심경(心經)』·『근사록(近思錄)』·주자서(朱子書)를 애독하였다. 만년에는 도선서원 유생들을 위해 「향음주고정의식(鄕飮酒攷定儀式)」을 제정하고, 『주서강록간보(朱書講錄刊補)』를 교열하였다. 경세론에도 조예가 있어 영양현감을 대신해 지은 9조항의 권농책(勸農策)은 유명하다.
저서
참고문헌
- 『대산전서(大山全書)』
- 『만곡집(晩谷集)』
- 『정재집(定齋集)』
- 『해은집(海隱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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