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안북도 정주 출신. 1911년 동지들을 규합하여 항일투쟁을 하다가 일본경찰에 쫓겨 만주로 건너갔다. 1918년 통화현(通化縣)에서 항일민족교육기관인 배달학교(倍達學校)를 설립, 교장직을 맡아 주민들에게 항일애국사상을 고취하는 한편 군사훈련도 실시하였다.
1919년 3·1운동이 발발하자 통화현에서 만세시위를 주도하였고 한족회(韓族會)의 간부로 활약하였다. 1920년 일본군의 만주대학살 때 김기선(金基善)·승대언(承大彦) 등 7명의 동지와 손자 조용주(趙龍珠)와 함께 일본군에 붙잡혀 학살당하였다.
1977년 건국포장, 1990년 애국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