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통

  • 역사
  • 인물
  • 고려 후기
고려 후기에, 정언, 고공낭중, 국자감대사성 한림학사 등을 역임한 문신.
이칭
  • 역락(亦樂)
인물/전통 인물
  • 본관옥과(玉果)
  • 사망 연도미상
  • 성별남성
  • 주요 관직고공낭중(考功?中)|국자감대사성(國子監大司成)|한림학사(翰林學士)
  • 출생 연도미상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민병하 (전 성균관대학교, 한국사)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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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고려 후기에, 정언, 고공낭중, 국자감대사성 한림학사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본관은 옥과(玉果). 자는 역락(亦樂).

생애 및 활동사항

체격이 크고 훌륭할 뿐만 아니라 경(經)·사(史)·백가(百家)에 두루 뛰어나 명종의 부름을 여러 차례 받았다.

문과에 급제한 뒤 정언(正言)을 거쳐 고공낭중(考功郎中)이 되어 전왕의 양위표(讓位表)와 신왕의 「권수청명표(權守請命表)」를 올리러 금나라에 사신으로 갔다가 구류되었다. 금인(金人)들이 조통의 재능을 사랑하여 돌려보내니, 태자문학(太子文學)을 거쳐 지서북면유수사(知西北面留守事)가 되었다.

1199년(신종 2) 동경(東京: 지금의 경상북도 경주)에서 도적이 일어나자 장작소감(將作少監)으로서 동경초무사(東京招撫使)가 되었으며, 이듬해 소부소감(小府少監)으로 진주안무사(晋州按撫使)가 되었다. 좌간의대부 국자감대사성 한림학사(左諫議大夫國子監大司成翰林學士)로 치사(致仕)하였다.

최당(崔讜)·백광신(白光臣) 등과 기로회(耆老會)를 조직하여 즐겼으며, 오세재(吳世才)·이인로(李仁老)·임춘(林椿)·황보항(皇甫抗)·함순(咸淳)·이담지(李湛之) 등과 벗하여 해좌칠현(海左七賢)으로 불리기도 하였다.

참고문헌

  • - 『고려사(高麗史)』

  • - 『고려사절요(高麗史節要)』

  • - 『동국이상국집(東國李相國集)』

  • -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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