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통 ()

고려시대사
인물
고려 후기에, 정언, 고공낭중, 국자감대사성 한림학사 등을 역임한 문신.
이칭
역락(亦樂)
인물/전통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미상
사망 연도
미상
본관
옥과(玉果)
주요 관직
고공낭중(考功?中)|국자감대사성(國子監大司成)|한림학사(翰林學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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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고려 후기에, 정언, 고공낭중, 국자감대사성 한림학사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본관은 옥과(玉果). 자는 역락(亦樂).

생애 및 활동사항

체격이 크고 훌륭할 뿐만 아니라 경(經)·사(史)·백가(百家)에 두루 뛰어나 명종의 부름을 여러 차례 받았다.

문과에 급제한 뒤 정언(正言)을 거쳐 고공낭중(考功郎中)이 되어 전왕의 양위표(讓位表)와 신왕의 「권수청명표(權守請命表)」를 올리러 금나라에 사신으로 갔다가 구류되었다. 금인(金人)들이 조통의 재능을 사랑하여 돌려보내니, 태자문학(太子文學)을 거쳐 지서북면유수사(知西北面留守事)가 되었다.

1199년(신종 2) 동경(東京: 지금의 경상북도 경주)에서 도적이 일어나자 장작소감(將作少監)으로서 동경초무사(東京招撫使)가 되었으며, 이듬해 소부소감(小府少監)으로 진주안무사(晋州按撫使)가 되었다. 좌간의대부 국자감대사성 한림학사(左諫議大夫國子監大司成翰林學士)로 치사(致仕)하였다.

최당(崔讜)·백광신(白光臣) 등과 기로회(耆老會)를 조직하여 즐겼으며, 오세재(吳世才)·이인로(李仁老)·임춘(林椿)·황보항(皇甫抗)·함순(咸淳)·이담지(李湛之) 등과 벗하여 해좌칠현(海左七賢)으로 불리기도 하였다.

참고문헌

『고려사(高麗史)』
『고려사절요(高麗史節要)』
『동국이상국집(東國李相國集)』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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