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 후기에, 예조, 형조참판, 승문원제조, 경상감사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승문원저작에 제수되고, 이어 승정원주서가 되었다. 명나라 사신 주지번(朱之蕃)이 왔을 때 예조좌랑으로 빈사(儐使) 유근(柳根)을 따라 영접했는데, 그의 시문을 보고 모두 감탄했다 한다. 그 뒤 시강원설서 · 사간원정언을 거쳐 광해군 즉위 후 시강원사서 · 문학이 되었고, 옥당(玉堂)에 선출되었다.
이어 이조정랑이 되었으나 간당(奸黨)에 휩쓸리지 않았다. 그러나 1613년 허균(許筠)의 옥사에 연루되어 이산(理山: 지금의 평안북도 초산)에 안치되었다가 1619년 허균이 복주된 다음 방면되었다. 인조반정 후 홍문관교리 · 부응교에 제수되어 경연관을 겸했고, 정묘호란이 일어나자 왕을 강화로 호종하였다.
광주목사(光州牧使), 예조 · 형조의 참판, 승문원제조, 경상감사 등을 역임했으며, 접반사(接伴使)가 되어 모문룡(毛文龍)을 맞기도 하였다. 일찍이 경연에 나가 임금과 대했을 때 인조가 붕당을 타파할 뜻을 비쳤는데, 이 때 그가 불가능한 일이라고 대답하였다. 이에 인조는 불끈 화를 내며 그 까닭을 물었다.
이에 그는 구양수(歐陽脩)의 고사를 들어 군자가 있는 곳에는 반드시 소인의 무리가 있게 마련인데 그것을 판단하고 가릴 수 있는 것이 중요한 일이라고 대답하였다.
또한, 삼사(三司)에 출입하면서 상주하는 데 소신을 다하여 거리낌이 없었다. 이로 말미암아 많은 적을 만들기도 하였다. 시문이 뛰어나고, 서화에도 능하여 명성이 높았다. 저서로 『죽음집』 · 『경사질의(經史質疑)』 10여 책이 있다.
참고문헌
- 『광해군일기』
- 『인조실록』
- 『국조방목』
- 『송자대전(宋子大全)』
- 『국조인물고』
- 『국조인물지』
- 『근역서화징(槿域書畵徵)』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