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권 7책. 사본(寫本). 조선왕조는 개창기부터 명나라에 대하여 사대정책을 견지하여 왔는데, 인조연간에 청나라가 명나라를 대신함으로써 대외정책의 기본골격이 흔들리게 되었다.
명·청의 교체는 화이론적(華夷論的 : 중국의 문화나 민족을 높이고 타민족의 그것을 낮게 평가하던 논리) 관념에 젖어 있던 사림들의 눈에는 비정상적인 상태로 인식되었던 것이다. 이러한 인식은 효종연간에 북벌론적 사유로 전환되기도 하였으나, 세월이 흐름에 따라 약화되었다.
이러한 상황에 대처하기 위하여서는 화이관념을 부식시키기 위한 적극적인 대책수립이 필요하다는 여론이 대두하였다. 이러한 대책의 하나로 1800년(정조 24) 봄에 명나라 의종(毅宗)의 위령제를 지내고, 역대의 지사와 병자호란 때 척화순절한 사람들의 정충대절(精忠大節)을 추념하여 병조참의 이의준(李義駿) 등에게 이 책의 편찬을 명하였다.
내용은 황조기년(皇朝紀年)·본국기년(本國紀年)·황단지(皇壇志)·황단연표(皇壇年表) 및 제신사실(諸臣事實)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특히, 이 책은 청나라와의 관계를 고려하여 반포대상을 엄격히 제한하여 황명단(皇明壇)·궁내의 5개소·사고(史庫)·홍문관·시강원에 각 1부씩만 배포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