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종(大宗)의 적장자손(嫡長子孫)이거나 지파조(支派祖)의 직계손, 즉 소종(小宗)의 적장자손을 일컫는다. 일반적으로 한 문중을 대표한다는 의미로 사용되는 종손은 대종의 적장자손이다. 조선시대 종손의 지위는 종가의 권위에 비례하여 최고로 존중받는 위치였다. 왜냐하면 종법상으로는 배항주의(輩行主義)보다 적계주의(嫡系主義)의 원칙이 확립되어 갔으며, 경제적으로도 위토(位土)와 임야의 나무와 풀을 베지 못하게 하는[禁養林野] 소유권이 종손에게 계승되었다. 사회적으로도 종손은 명망높은 조상의 후손으로서 사회적 신분과 종가와 서원(書院) · 가묘(家墓) 등의 소유자로서 위세를 물려받았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종손은 문중을 대표하고 문회(門會)를 통솔하며, 문중의 주요 행사나 업무의 결정권을 갖고 있었다. 종손은 대외적으로 문중을 대표하는 일, 문중 공유재산의 최고관리자로서의 임무, 제사 때 초헌관(初獻官)의 구실, 종가 사람들의 사회적 행위를 통제하는 구실, 그리고 문회의 의결사항들을 최종결정하는 구실을 혼자 수행하였다. 그리고 종손은 시조(始祖) 혹은 중시조(中始祖)의 가계(家系)와 가통(家統)을 잇고, 조상의 제사를 모실 책임을 지고 있었다.
한편, 전통사회에서 지손(支孫)들은 보종(補宗) 관념을 투철하게 갖고 있었다. 종손이 빈곤할 때에는 전 문중이 협력하여 모금활동을 벌이거나 부조를 하였다. 또, 종가에 대를 이을 자식이 없으면 지가(支家)에 차자(次子)가 있는 경우에 그 장자로 하여금 양자를 세우게 하는 것이 상례였으며, 이 경우 가령 지가의 독자라 할지라도 출계(出繼)하게 하였던 것이다. 오늘날에 이르러는 민주화 · 산업화 · 도시화의 영향으로 종손의 사회적 지위가 급격히 떨어졌으나, 관습의 영향으로 종손의 책임과 구실은 그대로 지속되고 있다. 따라서 종손은 문중을 유지하고 이끌어가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으며, 지손들에게는 비난과 문책을 받기가 일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