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학동 ()

청학동마을
청학동마을
인문지리
지명
경상남도 하동군 청암면 묵계리 청학동에 있는 도인촌(道人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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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경상남도 하동군 청암면 묵계리 청학동에 있는 도인촌(道人村).
개설

청학동이라고 하면 예로부터 전해 오던 도인(道人)들의 이상향을 말한다. 전국의 여러 명산에는 청학동의 전설이 남아 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청학동의 위치는 지리산에 있으며, 예로부터 천석(泉石)이 아름답고 청학이 서식하는 승경(勝景)의 하나로 간주되었다. 오늘날 현존하는 청학동은 지리산 청학동의 유래가 존재해 오던 곳에 자리잡고 있다.

이곳은 지리산 삼신봉(三神峰) 동쪽 능선 아래 해발 800m 고지인 지리산 중턱에 자리잡고 있는 작은 마을이며 도인촌으로, 특정 종교의 신도들이 집단적으로 거주하는 종교취락의 성격을 지닌다. 청학동의 가장 큰 특징은 주민들의 종교적 표상에서 잘 나타난다.

청학동 주민들은 모두 강대성(姜大成, 1898〜1954)이 창시한 유불선갱정유도교(儒佛仙更定儒道敎)라는 신흥종교를 믿고 있으며, 한국전쟁 이후에 이곳에 모여들어 마을을 형성하였다. 갱정유도는 단군계 신흥종교로 일명 일심교라고도 하는데, 그 정식 명칭은 ‘시운기화 유불선동서학 합일대도 대명다경 대길유도 갱정교화일심(時運氣和儒佛仙東西學合一大道大明多慶大吉儒道更定敎化一心)’이다. 남원에 본부를 두고 있으며, 지리산 청학동에는 수련소를 설치해 놓았다.

갱정유도의 사회적 표상은 집단생활을 한다는 것 이외에도, 신도는 한복에 푸른 조끼를 입고 남자와 여자가 모두 머리카락을 자르지 않고 길게 늘어뜨린다는 점이다. 성인이 되면 옛 선비들처럼 상투를 틀고 큰 갓을 쓰고 도포를 입는다. 자녀들은 학교에 보내지 않고 서당에 보낸다. 특히, 현대문명에 대하여 매우 비판적이라는 점이 갱정유도의 큰 특징이다. 또한, 주색초(酒色草)를 엄격히 금하나, 때로는 허용하기도 한다.

형성 및 변천

지리산 청학동이 문헌에 등장한 것은 이인로의 『파한집(破閑集)』으로 노인의 구전에 근거한 것이었다. 청학동에는 조선시대부터 사람이 거주하기 시작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때는 지원 병사들이 청학동에 들어와 거주하였고, 계속해서 많은 사람들이 들어와 100가구 정도가 살았다.

일제강점기에는 일본의 감시를 피해 사람들이 이주해오기도 하였다. 광복 이후에는 공산주의자들이 거주할 가능성이 있다는 이유로 청학동에 살던 주민들이 퇴거당하기도 하였다. 한국전쟁 이후 외부와 교류를 차단한 채, 종교 신봉자들이 모여 독특한 생활방식을 유지해 오고 있다.

현황

주민들은 논농사와 밭농사 이외에도 약초·산나물·벌꿀·가축사육 등으로 생계를 유지해 가며, 관광객들을 위한 전통 음식점을 경영하기도 한다. 가옥은 모두 우리나라의 전통적인 초가 형태를 띠고 있으나, 각종 문화시설, 예컨대 텔레비전·라디오·전화·세탁기 등이 갖추어져 있다. 놀이문화는 우리나라 전래의 민속놀이가 모두 행해지고 있다.

그러나 오늘날 청학동 주민들은 다소의 갈등을 겪고 있다. 우선, 세대간의 갈등이 두드러진다. 젊은층과 노인층 간의 갈등이 가끔씩 표출되기도 한다. 또한 문화적 갈등이 존재한다. 각종 문화시설과 전래의 생활도구가 혼재해 있으며, 외지인들의 울긋불긋한 여행용 옷차림과 흰 한복이 섞여 있다.

따라서 도인들의 이상향으로서 청학동의 이미지가 원래의 모습을 잃어 가지 않을까 우려되고 있다. 특히 현대에 와서 청학동을 형성한 갱정유도인들이 매스미디어에 의해 알려지고 정부 및 지방자치단체의 관광정책에 의해 관광지 개발이 촉진되면서 마케팅 장소로 탈바꿈하였다. 이에 따라 청학동의 장소 정체성이 변화하고 있는 실정이다.

참고문헌

『한국지리』(권혁재, 법문사, 2005)
『한국자원총람』(한국관광공사, 1985)
『한국종교, 창간호』(원광대학교 출판부, 1974)
「한국 이상향의 성격과 공간적 특징-청학동을 사례로」(최원석, 『대한지리학회지』44(6),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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