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학동은 지리산 불일폭포 부근에 있었다고 전해지는 한국의 전통적인 이상향이자 20세기 후반 전통적 청학동의 장소 이미지를 활용한 장소 마케팅을 통해 관광지로 개발된 곳이다, 전통적인 의미의 청학동은 오늘날 경상남도 하동군 화개면 대성리와 악양면 묵계리 일대로 비정된다. 고려 후기에는 하동의 불일폭포와 불일암 인근이 청학동으로 여겨졌으며, 조선시대에는 선경이자 이상향의 상징적 공간으로 부각되었다. 20세기 후반 하동군 청암면 묵계리의 도인촌이 독특한 문화경관과 매스미디어 영향으로 ‘청학동’이란 이름으로 알려지며 관광지로 개발되었다.
중국에서 이상향을 말할 때 주1을 떠올리듯, 우리나라에서는 청학동이 주2과 같은 이상향의 원형으로 인식되어 왔다. 고려 후기부터 청학동은 유학자들에게 이상을 투영한 상징적 장소로 인식되었으며, 조선 후기로 들어서면서는 민간인의 실제 생활공간이 되었고, 현대에는 관광지로 재구성된 문화공간으로 자리매김하였다.
늦어도 고려 후기 무렵부터 경상남도 하동군 지역의 불일폭포와 불일암 일대가 청학동으로 비정되었으며, 조선 후기에는 원래의 청학동 인근인 의신, 덕평, 세석, 묵계 등지에 민간 취락이 형성되었다. 주민들은 그곳에서 청학동의 이상을 구현하고자 하였고, 20세기 후반에는 하동군 청암면 묵계리가 행정기관의 명칭 지정과 홍보, 그리고 전통적인 청학동 장소 이미지를 활용한 장소 마케팅을 통해 관광지로 개발되었다.
청학동이 신선경(神仙境)으로서 장소 정체성을 형성하고 유지한 시기는 고려 후기에 시작되어 조선시대를 거쳐 근대까지 이어졌다. 이 시기 청학동의 지리적 위치는 지금의 하동군 화개면 운수리와 악양면 매계리에 걸친 일대로 인식되었다. 정치적 현실과 유가적 이상 사이의 괴리로 고민하던 조선시대 유학 지식인들에게 지리산(智異山: 1,915m) 청학동은 이상향으로서 가장 매력적인 장소였다.
당시 지리산 청학동은 그 위치를 정확히 알 수 없는 가상적이고 상상의 장소였지만, 불일폭포를 중심으로 한 비경은 지리산을 탐방하는 사람들에게 신선경으로서의 황홀한 미감을 주었을 것으로 판단된다. 조선시대의 많은 시문과 유산기(遊山記)에서 청학동의 장소 이미지는 주3의 선경으로 신비롭게 묘사되어 있다. 이러한 장소 이미지는 신선과 관련한 설화 내지는 인물이 부가되면서 더욱 강화되었다.
임진왜란[15921598년]과 병자호란[16361637년]을 겪은 이후 조선은 정치 · 사회적으로 혼란이 계속되었다. 백성들의 생활이 피폐해지면서 지리산 일대가 민중의 피난처로 인식되어 본격적인 인구 유입이 시작되었다. 특히 당시에는 지리산 청학동에 관한 소문과 장소 이미지가 널리 퍼져 있었고, 이는 유민들이 주거지를 선택하고 정착하는 데 강력한 매력으로 작용하였을 것이다. 여기에 더해, 풍수도참설의 유행과 『정감록(鄭鑑錄)』의 비결을 신봉하는 이들의 십승지(十勝地) 탐색은 청학동을 명당이자 길지로 부각시키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이처럼 명당 · 길지로서의 청학동이라는 장소 정체성은 조선 중기와 후기를 거쳐 형성되었으며, 오늘날까지도 일부 주민들 사이에서 유지 · 존속되고 있다.
지리산에서 민간인들이 마을을 형성하고 살았던 청학동은 기록에 남아 있는 것보다 더 많았을 것으로 추정되지만, 문헌이나 현지답사에서 확인할 수 있는 대표적인 곳으로는 하동군 화개면 대성리의 의신 · 덕평, 세석과 하동군 악양면 매계리의 매계 · 청학골 등을 꼽을 수 있다. 특히 대성리 의신 · 덕평을 포함한 지리산 골짜기는 송병선(宋秉璿: 1836~1905)의 「두류산기(頭流山記)」[1879]에서 보는 것처럼 “많은 사람이 생활할 수 있고 삼재가 들어오지 않는” 낙토(樂土)로 알려졌다.
20세기 후반 하동군 청암면 묵계리의 도인촌은 주민들의 독특한 생활양식과 마을의 문화경관이 매스미디어에 알려지고, 전국적으로 문화관광 붐이 일던 시기와 맞물려 지리산 일대의 대표적 관광지로 부상하였다. 이 과정에서 이곳은 ‘청학동’으로 지정 · 명명되었으며, 사회적으로 널리 인지되면서 청학동이라는 명칭이 고착되었다.
묵계리가 청학동으로 알려진 최초의 계기는 1956년경 신흥종교 집단인 갱정유도인(更定儒道人)들이 외부에서 전입해 학동마을에 정착하면서부터였다. 집단 신앙촌이 지닌 독특한 경관 구성과 생활 방식이 알려지고, 매스미디어가 이를 복고적 향수와 신비적 공간으로 부각하면서 청학동 이미지가 형성되었다. 이에 갱정유도인들도 ‘도인’에서 ‘청학동 사람’으로 집단 정체성을 바꾸었고, 1986년 공식적으로 청학동이라 명명하였다.
오늘날 묵계리 청학동은 지리산 청학동이라는 전통적 이상향의 장소 이미지를 바탕으로 관광지로 재구성된 공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