좨주

  • 종교·철학
  • 제도
  • 조선 전기
고려와 조선 전기에 걸쳐 국자감·성균감·성균관에 두었던 종3품의 관직명.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권오호 (한학자)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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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고려와 조선 전기에 걸쳐 국자감·성균감·성균관에 두었던 종3품의 관직명.

내용

1401년(태종 1) 사성으로 이름이 바뀌어 조선 말기까지 계속되어 왔다. 좨주라는 말은 옛날 여러 사람들이 일을 논의하기 위하여 회동하거나 마을에서 경사를 축하하기 위하여 향연을 베풀 때 그것을 하늘과 땅에 알리는 의식에서 비롯되었다.

회동이나 향연 때 그 가운데에서 존장자가 술을 땅에 부어 지신에게 감사의 제사를 지냈다. 그것이 계기가 되어 나이 많고 덕망이 높은 사람의 관직이 된 것이다. 중국에서는 진(晋)나라 때부터 시작된 제도로, 함녕(咸寧, 275∼279) 때 오왕(吳王) 비(濞)가 유씨(劉氏)로 좨주를 삼았다는 기록이 있다.

그 호칭도 시대에 따라 변경되었는데, 한(漢)나라 때에는 박사좨주(博士祭酒)라고 불렀으나, 진나라에 와서 처음으로 국자좨주로 불렀다.

참고문헌

  • - 『고려사(高麗史)』

  • - 『고려사절요(高麗史節要)』

  • -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

  • - 『통감(通鑑)』

  • - 『한서(漢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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