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는 운당(雲堂). 평안북도 강계 출신. 1910년 일제의 조선 강제병합 이후 동지 24명과 조국광복을 위하여 생사를 같이하기로 혈서로 맹세하고 만주의 독립운동단체와 연락하며 적극 협력하였다.
1919년 3·1운동이 일어나자 정준(鄭儁)·김병찬(金秉贊)·한봉민(韓奉珉)·김경하(金京河) 등과 협의하여 4월 8일 강계에서의 만세시위운동을 주도하였다. 이날 800여 명의 읍민이 참여하여 대규모 시위가 전개되었는데, 일본군 수비대가 시위대에 발포하여 시위대를 이끌던 정준·김병찬·손주공 등이 피살되고, 시위는 진압당하였다.
다시 여러 동지들과 독립주비단(獨立籌備團)을 조직하고 단장에 선임되어 군자금을 모금하여 만주의 독립운동단체들에게 보내고, 국내에 잠입한 독립군들의 식량을 조달하는 등 활동을 계속하였다. 1920년 2월 일본경찰에 붙잡혀 신의주형무소에서 옥사하였다.
1963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