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기에는 고려시대의 예에 따라 사온서(司醞署)라는 정규관청을 두고 궁중에서 소요되는 주류의 양조를 전담하게 하였다. 그러나 임진왜란 이후에 이 관제가 혁파되어 주방이라는 별칭으로 불리게 되었다.
근검절약을 강조하는 유교적 명분 때문에 사치와 방종을 상징하는 사온서가 혁파되기는 하였으나, 궁중의 실제적 필요 때문에 그 기능이 주방에 계승된 것으로 보인다.
1671년(현종 12)에는 한발에 의한 대기근으로 이 주방마저 혁파하려는 논의가 있었으나 실현되지 않았다. 이 때의 연간예산은 쌀 500여 석과 기타 잡물들이 있었다. 그 관리는 궁중의 내시나 잡직 관원들이 담당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