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초기에는 서울의 육조에도 서리(書吏)와 함께 중앙의 이서직의 하나로 이 관직을 두었으나 오래지 않아 폐지되었다. 함경도·평안도의 주사는 서울의 서리와 동급의 신분으로 이 지방의 토관(土官)들 아래에서 지방행정 및 군사업무를 담당하였다.
영흥부·평양부 및 대도호부·도호부·도절제사 등이 설치된 고을에는 각기 육방 아래 수십인 내지 100여인의 주사가 소속되어 있었다. 이들은 서울의 서리와 같이 근무일수 1,600일마다 1계급씩 승진하여 종7품에 이르면 근무를 면제시켜주고, 토관직에 임용되도록 하였다.
그러나 그것은 지인과 합쳐 3년마다 1인씩밖에 임용되지 못하였으므로, 그 기회는 드물었다. 따라서, 50세 이상이 된 자는 실직이 없는 산관(散官)만 주어 퇴역시키는 것이 보통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