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4년 정홍연의 후손 정헌용(鄭獻容)·정동관(鄭東觀) 등이 편집·간행하였다. 권두에 정동관의 서문, 권말에 정인춘(鄭寅春)의 발문이 있다.
4권 1책. 석인본. 전주대학교 도서관에 있다.
권1·2에 시 284수, 표(表) 1편, 권3에 서(書) 1편, 서(序) 2편, 기(記) 2편, 녹(錄)·소(疏)·축문 각 1편, 권4에 부록으로 만사 36편, 상량문 1편, 기 2편, 축(祝) 1편, 발(跋) 등이 수록되어 있다.
시의 「몽선아증시(夢仙娥贈詩)」는 1617년(광해군 9) 5월 어느 날 밤 무산(巫山)의 선녀를 만나 즐기던 꿈 속의 일을 읊은 것이다. 금옥(金玉)으로 휘장한 이향(異香)의 무산 선녀와 즐거움을 누렸던 황홀한 정경을 넉넉하고 아름다운 문체로 실제 겪었던 일처럼 표현하고 있어 문학적 가치를 지닌다.
서인 「백악산여묘당대신물의이도서(白岳山與廟堂大臣勿疑移都書)」는 임진왜란을 거친 뒤 조정 대신들 사이에 국도(國都)를 옮기자는 의논이 있자 그 부당함을 지적한 글이다. 한양은 도읍지로 왕기(王氣)가 다했기 때문에 천도해야 한다는 대신들의 주장에 대해, 기(氣)의 성쇠는 물(物)의 성쇠에 의하며, 물의 성쇠는 인물의 성쇠에 의한 것이므로 군왕을 잘 보필할 수 있는 인물의 등용을 생각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도참술수(圖讖術數: 장래의 길흉을 예언한다는 술수)를 조리 있게 반박하였다.
이 밖에 「통정대부전라도동복현감신정홍연……(通政大夫全羅道同福縣監臣鄭弘衍……)」은 1621년 동복 현감으로 부임한 후 군액(軍額)과 공역(貢役)의 과중한 부담에 대해 상론(詳論)한 내용이다.
임진왜란 이후 정치·사회 문제의 일면을 이해하는 데 좋은 자료로 평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