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절을 구성하는 국어의 모음들이 이에 해당된다. 중세국어의 어느 한 음절이 음절초(音節初) 자음, 음절의 중심을 이루는 모음, 그리고 음절말(音節末) 자음과 같은 3요소의 결합으로 구성되어 있을 때, 음절초 자음을 초성, 가운데의 모음을 중성, 음절말 자음을 종성이라고 하였다.
가운데의 모음은 음절의 가장 중심이 되는 핵모음 단독의 경우가 있고, 반모음 j나 w가 핵모음 앞에 와서 상향(上向) 이중모음을 이룬 경우와 반모음 j가 핵모음 뒤에 와서 하향(下向) 이중모음을 이룬 경우가 있으며, 또 반모음 j나 w가 핵모음 앞으로 오고 반모음 j가 핵모음 뒤에 와서 3자가 결합된 삼중모음의 경우가 있었는데, 훈민정음 창제 때에는 이들을 모두 중성이라고 하였다.
≪훈민정음≫ 예의편(例義篇)에서는 훈민정음 중성글자로서 {{%061}} ㅡ ㅣ {{%067}} {{%068}} {{%069}} {{%070}} {{%071}} {{%072}} {{%073}} {{%074}} 등 11자만 보이었으나 ≪훈민정음 해례≫ 중성해에서는 자운(字韻)의 가운데에 있어서 초성·종성과 합하여져 음절을 이루는 것을 중성이라 한다고 설명한 다음, 11자 이외에 이들 11자를 가지고 두 글자씩, 세 글자씩 합용하여 쓰는 합용자로서 {{%064}} {{%066}} {{%062}} {{%065}}와 {{%070}} ㅢ {{%075}} {{%076}} {{%077}} {{%078}} {{%079}} {{%080}} {{%081}} {{%082}} {{%083}} {{%084}} {{%063}} {{%085}} 등 반모음 j가 끝으로 오는 중성자 14자를 보이어, ≪훈민정음≫ 중성해에서 보인 중성자는 모두 29글자였다.
그러나 {{%066}} {{%065}} {{%063}} {{%085}} 등 네 글자는 15세기 중세국어나 한자음의 표기에 사용된 일이 없다. 또 ≪훈민정음≫ 합자해에서는 ○, ㅗ와 같은 중성자 사용의 가능성도 제시하였다.
중성자의 배열순서는 훈민정음 창제 때 {{%061}} ㅡ ㅣ {{%067}} {{%068}} {{%069}} {{%070}} {{%071}} {{%072}} {{%073}} {{%074}} 와 같은 순이었으나 16세기의 ≪훈몽자회 訓蒙字會≫(1527) 범례에서부터 현행과 같이 ㅏ ㅑ ㅓ ㅕ ㅗ ㅛ ㅜ ㅠ ㅡ ㅣ {{%061}}({{%061}}만 현재 쓰이지 않음.)의 순으로 변하였는데, 이 순서는 개구도(開口度)가 큰 쪽에서 작은 쪽으로 나간 것이다.
조선 후기 학자들은 이중모음을 합중성(合中聲) ‘ㅘ, ㅝ’와 중중성(重中聲)‘ㅣ(핵모음 뒤의 반모음 j를 뜻함.)’로 나누기도 하였으며, 모음체계의 변천에 따라 중성자도 많이 변하였다.
중성해에서 말한 자운의 개념에 따르면 ‘佳 개’, ‘快 쾌’와 같은 자음(字音)의 종성은 ‘ㅣ’인데 훈민정음 창제 때에는 이들 말음의 ‘ㅣ’도 중성에 포함시키고 ○글자로써 종성 표기를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