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비산 중암사

  • 종교·철학
  • 유적
  • 초기국가
대전광역시 중구 천비산(天庇山)에 있는 삼한시대와 고려시대의 창건설이 전하는 사찰.
이칭
  • 이칭묘각사(妙覺寺)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박상국 (문화재관리국, 서지학)
  • 최종수정 2024년 07월 05일
중암사 부도 미디어 정보

중암사 부도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정의

대전광역시 중구 천비산(天庇山)에 있는 삼한시대와 고려시대의 창건설이 전하는 사찰.

내용

대한불교조계종 제6교구 본사인 마곡사(麻谷寺)의 말사이다. 창건연대 및 창건자는 미상이나 삼한시대에 창건되었다는 설과 약 800년 전에 창건되었다는 설이 전한다. 원래 이 절은 묘각사(妙覺寺)라 하였으나 중암대사(中庵大師)가 거처한 이후 중암사로 명명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절의 역사는 거의 전래되지 않고 있다. 다만, 이 절에 서산대사(西山大師) · 사명당(四溟堂) · 영규(靈圭)의 영정을 모신 삼충사(三忠寺)가 있었으나 한말에 계룡산 갑사(甲寺)로 이전하였으며, 당우들도 1932년에 주지의 실화로 소실되었다. 화재 전에는 불교강원(佛敎講院)이 있었는데, 50∼60명의 학인들이 모여 공부하였다고 한다.

현재의 건물은 그 뒤 다시 지은 것으로 대웅전 · 산신각 · 요사채 등이 있다. 유물로는 넓은 반석 위에 있는 6기의 부도가 1989년 대전광역시 문화재자료(현, 문화유산자료)로 지정되었으며 선교양종대찰지비(禪敎兩宗大刹之碑) · 돌절구 · 떡돌판 · 시식대(施食臺) 등이 있다. 6기의 부도 중 5기에는 각각 추월당(秋月堂) · 한월당(漢月堂) · 천봉당(天峯堂) · 홍파당(泓派堂) · 한수당(漢水堂)의 각자가 있는데, 이들은 모두 조선 후기의 고승으로서 절의 사격(寺格)을 암시하여준다. 또, 임진왜란 때의 승장 영규가 금산전투에서 왜군의 총탄에 복부관통상을 입자, 이 절에 이르러 갑옷과 창검을 벗어놓고 갑사 청련암으로 가서 입적하였다고 한다. 민족 항일기에는 영규의 유물과 투구 · 고둥, 『화엄경』 1질, 『법화경』 1질, 『공신록』 4권이 보존되어 있었으나 광복 이후 모두 분실되었다고 한다.

참고문헌

  • - 『한국사찰전서』(권상로 편, 동국대학교출판부, 1979)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콘텐츠 이용 안내

콘텐츠 수정 요청

필수 입력 항목입니다.

주제
0 / 500자
근거 자료
첨부된 파일이 없습니다
파일선택

최대 5개, 전체 용량 30Mb 첨부 가능

작성 완료되었습니다.

작성글 확인

다운로드가 완료되었습니다.

다운로드할 미디어를 선택해주세요.

모든 필수 항목을 입력해주세요.

다운로드할 미디어가 선택되지 않았습니다.

다운로드 중 오류가 발생했습니다.

미디어 다운로드

  • 이용 목적을 상세히 작성하여 주세요.
    서비스 개선에 반영하도록 하겠습니다.

출처 표기 : [사진명]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필수 입력 항목입니다.

이용목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