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시대에는 종2품, 조선시대에는 정2품직이었다. 정원은 각 1인이다. 이는 1061년(문종 15) 중서문하성에 설치한 지문하성사를 1275년(충렬왕 1)에 지첨의부사(知僉議府事)로, 1356년(공민왕 5)에 다시 지문하성사로, 1362년에 다시 지도첨의사(知都僉議事)로 고친 것을 1369년에 문하부의 부활과 함께 지문하부사로 고친 것이다.
1392년(태조 1) 조선왕조 개창 후에도 그대로 존속하다가 1401년(태종 1) 문하부를 혁파하고 의정부에 병합시키면서 폐지되었다. 지문하부사는 도평의사사(都評議使司)의 사(使)로서 군국기무의 합좌회의에 참석하였고, 문하시중을 보좌하여 국정 전반을 관장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