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권 8책. 활자본. 1878년(고종 15) 후손 치익(致益)이 편집, 간행하였다. 권두에 김병학(金炳學)의 서문, 권말에 이우(李○)·치익의 발문이 있다. 규장각 도서·장서각 도서·국립중앙도서관 등에 있다.
권1∼5에 시 84수, 소차(疏箚) 100편, 서계(書啓) 8편, 의(議) 22편, 권6·7에 전(箋) 4편, 응제문(應製文) 3편, 제문 31편, 애사 1편, 서(書) 44편, 권8∼12에 비명 8편, 묘갈명 21편, 묘지명 35편, 묘표 14편, 권13∼15에 행장 2편, 시장(諡狀) 11편, 서(序) 4편, 기(記) 1편, 제(題) 17편, 발(跋) 5편, 잡저 4편 등이 수록되어 있다.
소는 거의 사직(辭職)에 관련된 것들이다. 그 가운데 「진향정소(陳餉政疏)」는 국방의 중요한 정책을 진언한 것이다. 배는 썩어서 쓸 수 없고, 오영(五營)의 군졸은 계속 도망하고 있으며, 성곽은 무너진 곳이 많으나 수리할 비용이 없음을 지적, 군량미의 비축이 시급함을 주장하였다.
「청감적소(請減糴疏)」에서는 흉년에 대비해 백성을 구휼하는 방법으로는 조적(糶糴 : 쌀 매매)의 시행이 불가피하나 그것을 이용하는 지방의 탐관오리들의 행패가 막심하다 지적하고, 그 시정을 위해 환곡 정책을 시행해야 한다고 역설하였다.
서(書) 가운데 「상포음김선생(上圃陰金先生)」에는 김창집(金昌緝)에게 학문하는 방법과 공부하는 가운데 일어나는 의문점과 처세하는 방법 등을 질의한 내용이 있다. 그리고 「답정병사(答鄭兵使)」에는 시급한 병무(兵務)에 대한 의견들이 제시되어 있다. 또 별지(別紙)에는 수영(水營)을 옮기는 문제에 대한 의견과 인선(人選)의 중요성을 논한 내용이 있다.
기에는 쌍계사와 해인사를 두루 돌아보고 가야산의 아름다운 경치를 적은 「유가야기(遊伽倻記)」가 있다. 그 밖에 대왕대비 상중(喪中)의 예(禮)에 관해 부의(附議)한 의(議)가 있다. 이는 당시의 정치적 양상을 잘 알려주는 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