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안북도 정주 출신. 1919년 3·1운동에 참여한 뒤 만주로 건너가 관전현(寬甸縣)에서 대한청년단(大韓靑年團)에 가입하였고, 이해 11월에는 대한청년단연합회 서기로 활동하였다.
1920년 5월 독립운동자금을 모아 이를 직접 대한민국임시정부에 전달하였으며, 그뒤 각 단체가 연합하여 임시정부 산하의 광복군사령부를 조직하는 데 함께 참여하였다.
그리고 사령관 이탁(李鐸)으로부터 권총·폭탄 등의 무기를 인수받아 안동현(安東縣)의 이륭양행(怡隆洋行)내에 있는 임시정부 교통국에 운반, 이를 다시 관전현으로 운송하던 중 일본경찰에 붙잡혔다. 1921년 5월 징역 3년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1977년 건국포장, 1990년 애국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