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전주(全州). 이름은 종생(終生). 정종의 여섯째 아들이고, 어머니는 숙의이씨(淑儀李氏)이며, 부인은 의령남씨(宜寧南氏)로 상호군 남심(南深)의 딸이다.
1444년(세종 26) 진남정(鎭南正)에 봉하여지고 종학유사(宗學有司)에 임명되었으며, 1453년(단종 1)에 정의(正義)로서 진남군에 봉하여졌다. 1455년(세조 1)에 경서대의(經書大義)에 통하였다고 취학(就學)을 면제받았으며, 특명으로 동생 덕천군 후생(德泉君厚生)과 더불어 종친례(宗親例)에 의거, 대궐에 나아가 시위(侍衛)하였다.
1461년조효산(趙孝山)의 처인 상원옹주(祥原翁主)가 과부로서 가난하게 살고 있는데도 형으로서 도와주지 않아 파직되었다. 1466년에 종실 중에서 최고로 어질다고 하여 특명으로 사옹원·장원서 제조에 임명되었다.
1468년 아들 진례군 형(進禮君衡)이 경상좌도절도사가 되었는데 그 아들 여의(如意)가 어머니를 따라 전라도 광주에 가서 병이 났기 때문에 그의 아들 이형(李衡)이 가서 구료(救療)할 수 있도록 청하였다.
1470년(성종 1) 연로하여 개소(開素: 채소 반찬을 먹던 것에서 육식을 시작함.)를 명받았으나 죽으니 예에 따라 조정의 일을 중단하여 조제(弔祭)하고 예장(禮葬)하였다. 성품이 공손하고 삼가하며 성색(聲色)을 즐기지 않고 아들을 가르치는 데 방도가 있었다. 시호는 이간(夷簡)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