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요약
진성창은 현재의 전북특별자치도 군산시 지역에 설치되었던 고려시대의 조창(漕倉)이다. 고려시대에는 전국에 13조창을 설치하고 각 지방의 세곡을 개경으로 운반하였다. 금강 하구 연안에 위치한 진성창은 전라도 전주와 임피, 진례 등 주변 지역의 세곡을 모아 경창으로 운송하였다. 세곡 운송과 보관을 관리하는 판관이 임명되었으며, 1척 당 1000석의 곡식을 실을 수 있는 초마선 6척을 배치되었다. 1358년 왜구의 침략으로 큰 피해를 입으면서 폐쇄 또는 이전한 것으로 추정된다. 1390년에 내륙에 가까운 용안에 득성창이 설치되면서 역할이 크게 위축되었다.
정의
고려시대에 현재의 전북특별자치도 군산시 지역에 설치되었던 조창(漕倉).
개설
내용
진성창의 현 위치는 전북특별자치도 군산시 성산면 창오리로 비정되고 있다. 창오리에는 창동과 창안마을이라는 지명, 진성창 터로 알려진 지점, 창안토성, 창안석불 등 조창과 연관되는 흔적들이 다수 확인되고 있다. 다만 창오리에서는 배가 정박할 만한 포구의 지형을 찾기 어려운 까닭에, 조종포를 비정할 만한 장소가 없다. 이에 창오리 창안마을에서 직선거리로 1㎞ 정도 동북쪽에 떨어져 있는 군산시 성산면 대명리와 나포면 서포리의 경계 지점 부근을 조종포의 유력한 입지로 파악하고 있다. 이 지역은 배후에 해발 50m 가량의 구릉이 존재하고, 옥곡저수지에서 나오는 개울의 물줄기가 금강으로 흘러들어가는 지점에 해당한다. 현재 이 일대는 농경지로 개간되어 있으나, 과거에는 금강 하구로부터 남쪽으로 들어온 만(灣)에 면한 지형이었다. 한편 조종포의 위치를 금강 하구와 바로 맞닿아 있는 현 군산시 나포면 서포리의 서포마을로 비정한 견해도 있으나, 진성창 터와 직선거리로 4㎞ 가량 떨어져 있어 조종포의 입지로 보기에는 너무 멀다는 문제점이 있다. 또한 원래 서포리 서포마을에 있던 진성창이 고려 말기 왜구의 침략으로 창오리 창안마을로 이전하였다가, 1390년에 용안 득성창(得成倉)으로 다시 이전했다는 견해도 제시되었다. 하지만 이 견해 역시 서포리 일원에서 고려시대 조창의 흔적은 찾을 수 없다는 문제점이 있다.
『고려사』에는 정종(靖宗) 때(1034~1046) 전국 각 조창에 배치할 조운선의 숫자를 정하면서, 진성창에는 1척 당 1,000석의 곡식을 실을 수 있는 초마선(哨馬船) 6척을 두었다고 한다. 진성창에 모인 세곡은 서해안을 따라 개경의 경창으로 운송되었다. 진성창을 비롯한 13조창 지역에 거주하는 주민들은 조창을 드나드는 세곡의 보관 및 운송과 관련된 실무를 담당했을 것이며, 13조창에는 판관(判官)이 임명되어 각 조창에서의 세곡 운송과 보관을 관리, 감독하였다. 인종 때(1122~1146) 개정된 외관(外官)의 녹봉 규정에 따르면, 13창의 판관에게는 20석의 녹봉이 지급되었다.
변천과 현황
의의와 평가
참고문헌
- 『고려사(高麗史)』
- 『세종실록(世宗實錄)』 지리지(地理志)
-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 『고려시대 조운제도 연구』(문경호, 혜안, 2014)
- 『고려시대 교통운수사 연구』(한정훈, 혜안, 2013)
- 『한국사』 14-고려 전기의 경제구조(국사편찬위원회 편, 탐구당, 1993)
- 「고려 진성창 연구: 조창의 위치와 구조를 중심으로 」(문경호, 『한국중세사연구』 43, 한국중세사학회, 2015)
- 「진포(鎭浦)와 진성창(鎭城倉)」(박영철, 『전북사학』 44, 전북사학회, 2014)
- 「고려~조선전기 조창(漕倉)의 분포와 입지」(정요근, 『한국사학보』 57, 고려사학회, 2014)
- 「군산∼강경의 수운(水運)과 나루터·포구의 유형」(김중규, 『금강 하구의 나루터·포구의 유형』, 선인,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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