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여양(驪陽). 자는 확이(廓而). 아버지는 진복명(陳福命)이며, 어머니는 판중추부사 황진(黃璡)의 딸이다.
1534년(중종 29) 식년감시(式年監試)에서 진사 제1인으로 합격하였다. 그 뒤 성균관에 들어가 명망이 높았는데 유생 유경인(柳敬仁) 등과 시국을 논하다가 기묘사화에 희생된 선비들을 옹호하고, 정권을 잡고 권력을 마음대로 하던 김안로(金安老) 등 삼간(三奸: 沈貞·李沆·金克愊)을 비방하다가, 이들의 사주를 받은 대간으로부터 정부를 비방하였다는 무고로 1535년홍례문(弘禮門) 밖에서 추국(推鞫)을 받고, 우두머리로 몰려 죽음을 당하였다.
외삼촌 황효공(黃孝恭)은 사간에 재직하면서 조카를 구호하려다 사판(仕版)에서 제명되기도 하였다. 유성룡(柳成龍)은 전(傳)을 지어 그를 미화하기도 하였다. 삼간이 물러난 뒤인 1538년에 신원되고 사헌부집의에 추증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