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1217년(고종 4) 진위현(振威縣 : 지금의 경기도 평택)의 사람들이 일으킨 반란.
내용
그리하여 굶주린 농민들을 규합하는 한편, 이웃 군에 통첩을 보내어 자칭 정국병마사(靖國兵馬使)라 하고 군대를 의병(義兵)이라 하였다. 그들은 종덕(宗德)·하양(河陽) 두 창고를 풀어 군사를 먹이면서 광주(廣州)를 침범하려 하였다.
이에 정부에서는 낭장(郎將) 권득재(權得材), 산원(散員) 김광계(金光啓) 등을 보내어 안찰사 최박(崔博)과 함께 광주·수주(水州 : 水原)의 군대로 이들을 쳤으나 진압하지 못하였다. 그리하여 다시 충청도·양주도(楊州道)의 군대를 징발하여 겨우 난을 진압시켰다.
이 난은 불평관료층인 동정직(同正職)을 지닌 산관(散官)들이 생활이 피폐한 농민들을 이용하여 일으킨 대규모의 민란이라 할 수 있다.
비록 눈앞의 탐관오리를 척결하고 재산을 약탈하는 데 그쳐, 보다 근본적인 해결을 요구하는 데까지는 이르지 못하였지만, 그들의 뭉친 힘을 과시함으로써, 무신들로 하여금 일시적이나마 조세감면과 탐관오리의 척결 등 농민들을 위한 시책을 실시하지 않으면 안 되게 하였다.
참고문헌
- 『고려사(高麗史)』
- 『고려사절요(高麗史節要)』
- 「농민(農民)·천민(賤民)의 난(亂)」(변태섭,『한국사』7, 국사편찬위원회, 19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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