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 충청북도 기념물로 지정되었다. 구릉지에 위치한 토축의 산성인데, 기록에는 석축이고 둘레가 2,670척(尺)이며 성안에 우물이 하나 있다고 하였다. 그러나 실제로는 석축이 아니고, 판축(版築)의 토루로 되어 있으며, 일부분에 약간의 석재가 있을 뿐이다. 주변의 사람들은 할미성이라고 부른다.
성은 내성(內城)과 외성(外城)의 두 구역으로 되어 있는데, 이를 안성과 바깥성으로 부르며, 서쪽이 안성이고 동쪽이 바깥성이다. 안성은 둘레가 827m이고, 곡구(谷口)를 이룬 곳의 서남으로 수구(水口)터가 있고, 문터는 이미 훼손되었다. 북쪽으로 작은 문터가 있으며, 성벽이 꺾이는 부분은 보다 높고 넓은 성벽으로 되어 있다.
외성은 내성의 동벽과 외성의 서벽이 벽체를 공유하며, 둘레가 660m이다. 남으로 곡구가 있고, 문터가 북쪽과 동쪽 남쪽에 있으며, 수구는 훼손되었다. 성안에서는 청동기시대 이래의 각종 토기편과 와편 및 쇠를 뽑아낸 흔적으로 여겨지는 슬래그(slag) 등이 출토되고 있다.
성벽은 구릉의 능선 정상부에서 외향의 사면을 이용하여 축조되고, 곡구에서는 내외협축(內外夾築 : 중간에 흙이나 돌을 넣고 안팎에서 돌 들을 쌓은 것)의 성벽을 만들었던 것으로 여겨진다.
이 성의 남쪽으로는 고인돌이 있는 괸돌마을이 있는데, 백곡천이 흘러 땅이 기름지고, 동쪽과 북쪽은 해발 100m 내외의 구릉지로 되어 있다.
성의 주변에는 저장구덩 유적과 원삼국시기의 분묘 유적 및 신라 석실분의 유적이 가까이에 있고, 그 외곽으로는 석장리 철 생산 유적과 산수리와 삼룡리의 백제 토기가마터 유적이 있어서, 청동기시대 이래의 중심 취락에 백제시기에 토성을 축조하였던 것으로 여겨진다. 이 성에도 남매축성의 설화와 고려말 임연(林衍)과 관련된 전설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