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8년 사적으로 지정되었다가 2011년 사적 '진천 산수리와 삼용리 요지'라는 명칭으로 재지정되었다. 지정면적 3,200㎡. 한남대학교 박물관이 1986년중부고속도로 공사 당시 발굴조사한 가마터로, 모두 9기의 대형·소형 가마터와 2개의 작업장이 확인되었다. 가마의 구조는 야산의 경사면을 이용한 등요(登窯)이며, 지하굴식(地下窟式)의 대형가마 5기와 반지하식의 소형 가마 4기로 구분할 수 있다.
대형가마인 7호가마는 전체 길이 7.7m, 너비 2.95m, 천장의 높이는 1.55m이다. 야산 경사면에 아궁이를 수직으로 파내려간 다음 아궁이쪽으로부터 굴을 뚫어 번조실(燔造室)을 만든 지하굴식 가마로, 아궁이로부터 점점 넓어져 번조실 앞 부분이 최대 너비를 이루고 뒤로 가면서 좁아졌다.
소형가마인 4호가마는 전체 길이 3.6m, 너비 1.6m로 전면이 둥글게 되어 있으며, 출토 도편(陶片)들은 회흑색 경질도기(硬質陶器), 회색·적갈색 경질도기, 흑색도기 등이다. 기형(器形)은 대형의 짧은 목항아리, 소형의 짧은 목항아리, 달걀모양항아리로 대부분 짧은 목에 밖으로 벌어진 것이며, 전면은 돗자리무늬의 타날(打捺) 수법에 의하여 제작된 것이다.
가마의 제작시기는 서울 석촌동의 백제토광묘 도기들과 비슷한 기형이 출토되고 있어 백제시대 3∼4세기경으로 추정되고 있다. 백제 초기의 도요지로서, 대형·소형의 9기의 요가 집단으로 작업장과 함께 발굴조사되었고 다양한 질그릇들이 함께 출토된 중요한 요지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