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화성시 장안면 출신. 1919년 4월 3일 차희식(車喜植) 등과 함께 화성군 장안면·우정면 일대의 독립만세운동을 지휘하였다. 고향인 수촌리 이장 백낙렬(白樂烈)로부터 장안면사무소에서 독립만세운동이 전개되고 있는 사실을 전해 듣고 즉시 그곳으로 달려갔다.
장안면장 김현묵(金賢默)이 큰 태극기를 들고 앞장서고, 차병혁(車炳爀)·정서송(鄭庶松) 등이 인솔하는 2,000여 명의 선두에 서서 우정면사무소로 행진하여 건물을 파괴하고, 집기류와 공문서를 파기하는 데 앞장섰다. 이어 석포리 이장 차병한(車炳漢)의 제안으로 군중을 인솔하여 화수리에 있던 경찰관주재소를 습격, 방화하였다.
이때 주재소 안에서 일본순사 가와바타[川端豊太郎]가 권총을 발사하며 뛰쳐나와 도망하자 차희식·정서송 등과 함께 추격하여 격살하는 등 격렬하게 독립만세운동을 전개하다가 붙잡혔다. 징역 10년을 선고받고 복역 중 옥사하였다.
1977년 건국포장, 1990년 애국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