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안북도 용천 출신. 1905년 기독교인이 되었고, 1906년 세례를 받았다. 1910년선천 신성중학교를 졸업하였고, 1911년서울 새문안교회에서 언더우드(Underwood, H. G.)에 의하여 발탁되어 조사(助事)가 되었다.
1916년 평양장로회신학교를 졸업하고 그 해 경충노회에서 목사안수를 받았다. 1917년 경충 노회장에 피임되었으며, 1920년에는 새문안교회 목사로 초빙 받아 그 해 12월부터 목회를 시작하였다.
목회활동에 있어 신앙의 체계화, 교회행정의 기구화에 중점을 두었는데, 이러한 행정능력으로 1928년『조선예수교장로회사기』상권의 편집을 맡기도 하였다.
1929년 제18회 장로회총회에서 총회장으로 선출되어 교회행정가로서의 역량을 발휘하였다. 또한, 교회연합운동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1921년에는 예수교 장·감 연합협의회 부회장을, 1924년에는 예수교연합공의회 회장을 맡기도 하였다.
1938년 신사참배문제로 평양장로회신학교가 폐교된 뒤 채필근(蔡弼近)·김영주(金英珠)·김대현(金大鉉) 등과 함께 1939년 3월에 조선신학교 설립기성회를 조직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