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명 양성원(養成院)·순성회(順成會)·찬양회(讚揚會)이다. 1898년 9월 1일 우리나라 여성에 의한 최초의 여권운동이 서울 북촌에 사는 양반부인 400여명을 중심으로 일어나 일반부인사회로 확대되었다.
이들은 “신체 수족 이목이 남녀 간에 다름이 없는데 어찌하여 여자는 병신 모양으로 평생을 심규에 처하여 남자의 절제를 받는가? 여학교를 세워 남녀평등을 이룩하자.”는 내용의 여권 통문(通文)을 반포하였다.
이 통문은 천부인권사상을 배경으로 교육받을 권리와 직업권 및 정치참여권을 주장하였다. 통문 반포에 참여한 부인들이 모여, 같은 해 9월 12일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운동단체인 찬양회를 조직하고 여학교설립운동과 함께 성인부인을 계발시키는 사업을 추진하였다.
여학교설립추진운동으로는 관립여학교 설립의 상소를 하고 우리나라 최초의 순수사립여학교인 순성여학교(順成女學校)를 설립, 후원하였다. 순성여학교는 1899년 4월에 문을 연 뒤 1903년까지 교장 김양현당(金養賢堂)에 의하여 운영되었다.
고종이 관립여학교 설립을 약속하였으나, 보수 유생층의 반대와 재정부족을 이유로 실현되지 못하였다. 이 단체는 여학교설립운동 이외에 독립협회 등이 중심이 된 만민공동회의 자유민권운동에 참여하였다.
『제국신문』을 간행한 이종일(李鍾一)은 찬양회운동을 우리나라의 여성해방운동으로 간주하여 『제국신문』은 찬양회의 홍보기관지라고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