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전기 문신·학자 성현·성중성 등이 1493년에 간행한 창녕성씨의 족보.
내용
이들 서·발문에 따르면, 성중성은 가문에 족보가 없는 것을 한스럽게 여겨 20여년의 노력 끝에 이 족보의 편찬을 완료했다고 한다. 당시만 하더라도 창녕성씨는 시조를 실전한 상태였는데, 성중성은 여러 문헌을 통해 시조 성인보(成仁輔)의 존재를 확인하는 개가를 올렸다.
체제와 내용을 정확하게 알 수는 없으나 서·발문이 있는 것으로 보아 체제는 비교적 완비되었음을 알 수 있고, 본손은 물론 서손·외손까지 포괄했다는 언급에서 내용에 있어서도 내외 자손을 최대한 수렴하려 했음을 알 수 있다.
성현은 자신의 저술 『용재총화(慵齋叢話)』에서 광주이씨(廣州李氏)와 창녕성씨를 당대 최고의 문벌가문으로 평가하였는데, 이 족보의 간행 역시 문벌의식의 발로라 하겠다.
이처럼 계축보는 창녕성씨족보의 출발점으로서 1616년(광해군 8)의 병진보(丙辰譜), 1709년(숙종 35)의 기축보(己丑譜) 등 후간된 족보의 전범이 되었다는 점에서 의의가 크다.
참고문헌
- 『허백당집(虛白堂集)』
- 『용재총화(慵齋叢話)』
- 『창녕성씨낭장공파보(昌寧成氏郎將公派譜)』
- 『창랑집(滄浪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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