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준치수 높이 110∼160㎝, 앞너비 75∼130㎝, 옆너비 40∼50㎝. 조선시대의 남성들은 사랑방에서 벗을 맞아 예(禮)를 논하고 유학(儒學)을 연구하는 풍조가 성하여 서책을 멀리 할 수 없는 생활을 하였으므로, 책장은 필수적인 것으로 여러 형태의 것이 형성되었다.
옛 서책은 크기가 크고 부피가 많았던 까닭에 책장의 규모도 이에 비례하여 문짝이 커지고, 문짝을 활짝 열기 위하여 책장 옆널 좌우에는 쥐벽칸이 따로 없이 경첩(창문이나 세간의 문짝을 다는데 쓰는 쇳조각 장식)을 문판(門板)과 기둥에 직접 부착하였다.
그리고 흔히 장롱문판 하단에서 볼 수 있는 머름칸의 공간이 없고, 문을 열면 바로 서책을 꺼내기 쉽도록 되어 있다. 종류로는 앞판 긴 문짝 속에 여러 개의 층널을 만들어 한눈에 위아래층을 다 볼 수 있게 만든 것도 있고, 층마다 따로 문짝을 단 것이 있다.
많은 책의 무게를 지탱할 수 있도록 골재로는 단단한 참죽나무·소나무, 판재로는 오동나무·소나무, 부재로는 광택이 없는 오동나무·소나무가 많이 쓰였으며, 약간의 무쇠장식과 더불어 검소한 소박미를 보여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