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곡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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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문신, 송상현의 시가와 산문을 엮어 1895년에 간행한 시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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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 전기의 문신, 송상현의 시가와 산문을 엮어 1895년에 간행한 시문집.
내용

2권 1책. 목활자본. 1895년(고종 32) 9대손 달호(達浩)가 편집, 간행하였다. 권두에 이탁원(李鐸遠)의 서문이 있다. 국립중앙도서관·장서각 도서·고려대학교 도서관·연세대학교 도서관 등에 있다.

권1에 시 21수, 과시(科試) 2편, 표(表)·조(詔)·교서(敎書) 각 1편, 권2에 부록으로 전(傳)·행장·신도비명·동래남문비기(東萊南門碑記)·임진유문(壬辰遺聞) 각 1편, 사제문(賜祭文) 10편, 축문 5편, 청부조주의(請不祧奏議)·육신연주비지(六臣筵奏批旨)·전교(傳敎) 각 1편 등이 수록되어 있다.

시의 「제수주객사 題愁州客舍」는 경성의 통판(通判)으로 있을 때 읊은 것이다. 저자의 충군애국(忠君愛國)하는 마음이 잘 나타나 있다. 「절구불음주(絶口不飮酒)」는 장원으로 합격한 글이다.

송나라 악비의 충성심을 나타낸 것이다. 악비(岳飛)가 술을 좋아하다가 금나라의 침입으로 국가가 위태롭게 되자 술을 끊고 하북(河北)과 양경(兩京)을 평정한 뒤, 임금에게 남산(南山)의 수(壽)를 빌며 술잔을 들겠다고 한 고사를 기록하였다.

표의 「의당위숙옥사복립부비(擬唐魏叔玉謝復立仆碑)」는 당태종(唐太宗)이 간신배들의 참언으로 위징(魏徵)의 비석을 쓰러뜨렸다가 요동정벌(遼東征伐)에 실패하고 돌아가던 중, 전일 위징의 충성심이 떠올라 다시 비석을 세워준 일에 대해 위징을 대신해서 감사하는 마음을 적은 글이다.

「조강주대의문진긍속(詔江州戴義門陳兢粟)」은 강주 구강(九江)에서 700여 명의 식구를 거느리고 화목하게 살아가는 진포(陳褒)에게 식량을 주라는 조서를 의작한 것이다.

교서의 「교추충분의협책평난공신통정대부장례원판결사민인백서(敎推忠奮義協策平難功臣通政大夫掌隷院判決事閔仁伯書)」는 선조를 대신하여 지은 것으로 진안현감으로 있다가 정여립(鄭汝立)을 포획한 민인백의 공로를 치하하기 위해 내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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