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2년 천도교(天道敎)에서는 보성사(普成社) 안에 민족문화수호운동본부를 설치하고 범국민신생활운동을 전개하였다. 1913년까지 강연회를 개최하여 독립사상을 고취하는 한편, 군자금을 모금하여 대한독립의군부(大韓獨立義軍府)에 송금하였다.
1914년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민족운동의 성숙기가 도래하였다고 판단, 이 본부를 해산하고 항일비밀결사인 천도구국단을 결성, 손병희(孫秉熙)를 명예총재로, 이종일(李鍾一)을 단장으로 추대하고 각계의 민족운동 지도자들이 참여하도록 하였다.
그리고 제1차 세계대전에 따른 국제정세의 변화를 분석하고 대대적인 민중시위운동을 계획하여 선언문을 작성, 준비하였으나 1915년 일본경찰에 압수당하여 실패하였다. 그 뒤 다시 민중봉기계획을 수립하여 종교계 인사를 규합하였는데, 이 움직임이 3·1운동으로 직결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