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안 통구고분군을 이루는 6개 고분군 가운데 마선구고분군(麻線溝古墳群)에 속하는 고구려고분이며, 마선구평야에 위치한 대형 돌무지무덤〔積石塚〕이다. 천추총(千秋塚)이라는 명칭은 ‘천추만세영고(千秋萬歲永固)’·‘보고건곤상필(保固乾坤相畢)’이라는 명문에서 유래하였는데, 일제강점기인 1935년(소화 10) 10월 1일에 조선총독부에 의한 발굴조사가 이루어졌다. 현재의 공식명칭은 ‘마선구 1000호묘’다.
천추총은 훼손이 심하여 원상을 잃었지만 원래는 10층 정도의 계단식 돌무지무덤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무덤 평면은 한변 길이 63m 정도의 네모난 형태이며 높이는 가장 많이 남아 있는 곳이 10.9m, 파괴가 심한 동쪽은 7.9m 정도이다.
무덤은 먼저 지표면을 단단하게 다진 후 커다란 돌로 기단을 만든 후 기단 내부를 돌로 채우고 같은 방식으로 층단을 지면서 쌓아올렸다. 계단을 쌓는데 사용되는 돌은 다듬은 흔적이 보이지 않도록 잘 가공하였으며 둘레에 홈을 만들어서 위쪽에 얹은 돌이 튕겨나가지 않도록 고려하였다.
무덤의 윗부분은 편편하며 정상부에서 태왕릉(太王陵)의 집모양 돌덧널〔石槨〕과 같은 석재가 남아 있어서 태왕릉과 같은 돌방 내에 가형 돌덧널이 있고 돌덧널 내에 부부를 합장하였던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무덤 둘레를 돌아가면서 거대한 화강암을 버텨 놓았는데 한 변에 5매씩 총 20매가 있었을 것이다.
널방은 기단 상부에 축조되었으며 무덤의 전체 외형은 방추형이다. 무덤의 주변에서 상당수의 명문전(銘文塼)이 출토되었다. 무덤의 주위에서 격자무늬·노끈무늬·구름무늬〔卷雲文〕등의 기와편이 다량 수습된 것으로 보아, 장군총(將軍塚)이나 태왕릉과 함께 묘역에 사당이나 관계시설이 세워졌던 듯하다.
그밖에 2003년도 조사에서 금실과 금제장신구, 금동못과 갑옷편, 청동방울, 철제칼과 고리, 철제갑옷, 꺾쇠 등이 수습되었다.
천추총에서는 ‘미재영락(未在永樂)’으로 판독되는 기와편이 수습되었는데, 고구려 영락(永樂) 연간의 미(未)는 을미(乙未: 395)와 정미(丁未: 407)가 있어서 천추총의 축조연대를 판단하는데 중요한 단서가 된다. 천추총은 명문기와와 연화문와당으로 미루어 4세기말경 태왕릉보다 먼저 조성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출토된 기와편 가운데 구름무늬와당은 집안현박물관 근처의 유적에서 수습된 ‘태(泰)’자 명문 와당과 거의 같아 같은 시기인 4세기 중엽경의 작품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 고분의 규모 및 축조기법으로 보아 왕릉급에 해당하는 완성기의 기단이 있는 돌무지무덤이다. 천추총의 주인공으로는 미천왕, 고국원왕, 소수림왕, 고국양왕 등이 비정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