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주민란

  • 역사
  • 사건
  • 고려 후기
1172년(명종 2) 지방관의 탐학에 시달리던 철주(鐵州 : 지금의 평안북도 철산) 농민들이 일으킨 민란.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민병하 (전 성균관대학교, 한국사)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정의

1172년(명종 2) 지방관의 탐학에 시달리던 철주(鐵州 : 지금의 평안북도 철산) 농민들이 일으킨 민란.

내용

1170년(의종 24)정중부(鄭仲夫) 등에 의하여 무신정권이 성립되면서 신분질서의 해이와 하극상의 풍조로 사회적 동요를 가져와 지방관의 탐학과 빈곤에 시달리던 농민 및 노예 등 빛을 보지 못하던 하층민에 의한 반란이 전국적으로 일어났는데, 그들의 반란 가운데에서 멀리 떨어진 북계(北界 : 지금의 平安道)에서 가장 먼저 일어났다.

1172년철주 사람들이 그 우두머리를 죽이려고 모의하다가 격투가 벌어져 죽었다. 이 철주민란이 일어나던 해 창주(昌州 : 지금의 평안북도 창성)와 성주(成州 : 지금의 평안남도 성천)에서도 민란이 일어났는데, 서북면병마사(西北面兵馬使) 송유인(宋有仁)이 이를 제어하지 못하고 사직하였다.

그 뒤를 이은 우학유(于學儒) 또한 이를 제어하지 못하였다. 이러한 북계 3주의 민란은 수령들의 가렴주구와 횡포에 대한 반항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참고문헌

  • - 『고려사(高麗史)』

  • - 『고려사절요(高麗史節要)』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콘텐츠 이용 안내

콘텐츠 수정 요청

필수 입력 항목입니다.

주제
0 / 500자
근거 자료
첨부된 파일이 없습니다
파일선택

최대 5개, 전체 용량 30Mb 첨부 가능

작성 완료되었습니다.

작성글 확인

다운로드가 완료되었습니다.

다운로드할 미디어를 선택해주세요.

모든 필수 항목을 입력해주세요.

다운로드할 미디어가 선택되지 않았습니다.

다운로드 중 오류가 발생했습니다.

미디어 다운로드

  • 이용 목적을 상세히 작성하여 주세요.
    서비스 개선에 반영하도록 하겠습니다.

출처 표기 : [사진명]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필수 입력 항목입니다.

이용목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