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사』백관지에 의하면, 1068년(문종 22) 동궁의 직제 강화에 의하여 정3품 지부사(知府事) 1인, 정3품 첨사 1인, 종3품 소첨사 1인을 동궁 소속관직으로 설치하였다.
1116년(예종 11) 태자 관속을 정하면서 문종 때의 전례에 따라 첨사·소첨사를 두었다. 1131년(인종 9) 첨사부는 독자적인 관부로 독립하면서 좌·우첨사 각 1인, 사직 1인, 주부 1인, 녹사 1인, 춘방통사사인(春坊通事舍人) 2인으로 그 조직이 확대되었다.
신종이 즉위한 뒤에는 문무관 자제 30여 인으로써 춘방시위공자(春坊侍衛公子)와 춘방시위급사(春坊侍衛給事)에 충당하기도 하였다. 1276년(충렬왕 2) 세자첨사부를 설치하면서 승(丞)·사직·주부·녹사·춘방통사사인 1인을 두었으며, 1279년 세자사(世子師) 등과 함께 첨사부지사를 두었다.
1354년(공민왕 3) 춘방원(春坊院)을 세워 동궁의 사무를 전적으로 맡도록 하였는데 이때 정4품 지원사(知院事) 1인, 정5품 좌우위수(左右衛率)를 무관으로 각 1인씩 임명하도록 한 이외에 정6품 자의(諮議) 1인, 정7품 세마(洗馬) 1인, 장사(長史) 1인을 두어 첨사부의 임무를 계승하도록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