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요약
정의
고려시대, 국자감과 보문각 등에 소속된 관직.
설치 목적
임무와 직능
이들의 정확한 직무는 잘 알 수 없으나, 소속 관사의 기능인 학문 연구와 교육 활동을 보조하는 행정적 사무, 특히 재정 업무를 주관하는 실무자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예종이 양현고(養賢庫)를 설치하면서 근시(近侍)를 보내 그 사무를 관구하게 하였는데, 여기에서 행정 사무를 담당한 것으로 이해된다. 이처럼 행정 사무를 담당하는 역할이나 그 사람을 관구로 표현한 사례는 더 찾을 수 있다. 1145년(인종 23) 김부식(金富軾)이 『삼국사기(三國史記)』를 편찬할 때 우승선(右承宣) 정습명(鄭襲明)과 내시(內侍) 김충효(金忠孝)가 각각 관구 및 동관구로 참여한 일이 있고, 의종(毅宗) 때 흥왕사(興王寺)의 관구로 내시를 임명한 적도 있다. 이로 보아 관구는 국자감이나 보문각만이 아니라 특정 임무의 수행을 위한 기구나 담당관으로 설치한 관직임을 알 수 있다. 이 경우에도 관구는 역시 행정적 사무를 담당하였던 것으로 이해된다.
참고문헌
원전
- 『고려사(高麗史)』
- 『삼국사기(三國史記)』
단행본
- 박용운, 『『고려사』 백관지 역주』 (신서원, 2009)
논문
- 정구복, 「고려시대 사학사 연구」 (서강대학교 사학과 박사학위논문, 1985)
- 周藤吉之, 「高麗前期の寶文閣」 (『朝鮮學報』 90, 1979; 『高麗朝官僚制の硏究』, 法政大學出版局, 1980)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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