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학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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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4년에 상동교회(尙洞敎會) 목사 전덕기(全德基)가 신교육운동과 교육구국의 일환으로 서울에 세운 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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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1904년에 상동교회(尙洞敎會) 목사 전덕기(全德基)가 신교육운동과 교육구국의 일환으로 서울에 세운 학교.
내용

설립 당시 공옥학교(攻玉學校)의 건물을 사용하여 중학교 정도의 교육을 실시하였다.

야간으로 운영되었으며, 기독청년을 대상으로 시작하였다가 점차 범위를 넓혀 누구나 배우며 애국할 수 있는 청년교육을 실시하였다. 개화운동의 선구자인 강화도의 이동휘(李東輝), 수원의 임면수(林勉洙) 등은 청년학원에서 배우고 고향으로 돌아가 학교를 설립하여 애국계몽운동을 실시하였다.

또한, 교사자격이 있는 사람을 대상으로 한 국어강습소를 청년학원내에 개설하여, 주시경(周時經)이 매주 일요일마다 국어를 가르치기도 하였다.

당시 청년학원은 애국지사들의 총집합소로서, 기독교의 중견인물을 비롯하여 노백린(盧伯麟)·이상재(李商在)·남궁 억(南宮檍)·이동녕(李東寧)·이승만(李承晩)·신채호(申采浩)·윤치호(尹致昊)·김구(金九)·이준(李儁)·최광옥(崔光玉) 등이 모였으며, 신민회(新民會)의 기관학교로서 독립사상 고취에 노력하다가 1914년 일제에 의하여 강제로 폐교당하였다.

참고문헌

『주시경전』(김세한, 정음사, 1974)
『황성신문(皇城新聞)』(1906.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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