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도 3·1운동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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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년 3·1운동 때 경상북도 청도군에서 일어난 독립만세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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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1919년 3·1운동 때 경상북도 청도군에서 일어난 독립만세운동.
내용

이곳의 독립만세운동은 운문면 신원동에 사는 청년유지 김상구(金相久)·김종태(金鍾台)가 고종의 인산(因山) 참배차 상경했다가, 서울에서 전개된 3·1운동을 목격하고 돌아와 사립 문명학교(文明學校) 교장 김우곤(金禹坤)의 집에서 수명의 청년들과 만나 독립만세운동을 계획함으로써 시작되었다.

이들은 격문 20여 장을 작성해 면내 방음·대천·오진·공암리의 각처 요소에 붙였다. 이로 인해 3월 18일김진효(金鎭孝) 등 청년들이 운문주재소로 호출당해 취조를 받고 돌아오던 중, 당장에 독립만세시위를 전개하자고 결의하였다.

그리고 운문면사무소로 가서 면서기 4명에게 각각 ‘대’·‘한’·‘독’·‘립’이라는 글자를 쓰게 하고 그들은 ‘만세’를 써 ‘대한독립만세’라고 쓴 큰 기를 만들어 독립만세시위운동에 들어갔다.

이에 수많은 군중이 호응해 열광적으로 만세운동을 전개한 뒤 자진해산하였다. 그러나 이 거사로 인해 많은 사람이 구금되었다. 한편, 평양신학교에 입학하기 위해 평양에 갔던 대성면의 김보곤(金寶坤)은 그 곳에서 전개된 독립운동에 관한 소식을 듣고 곧바록 귀향하였다.

3월 17일 유천(楡川 : 지금의 경상북도 청도군)장날에 독립만세운동을 전개하기로 계획하였으나 실패하였다. 그 뒤 5월 17일 400여 명의 군중은 미즈노(水野) 외 2명의 일본인 집을 습격, 구타한 뒤 철수하였다.

그 밖에도 3월 11일 매전면 장연동에서 김집이(金集伊)를 비롯한 농민 7명이, 3월 30일과 4월 20일 대성면 거연동에서 이승덕(李承德) 등 단산서당(丹山書堂) 학생들이 독립만세시위를 전개하였다.

참고문헌

『독립운동사자료집』5(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2)
『독립운동사』3(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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