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권 1책. 목판본. 1806년(순조 6) 8세 손 긍주(肯柱) 등이 간행하였다. 규장각 도서와 고려대학교 도서관 등에 있다.
『청송집』은 2본이 있는데, 중간본에는 권두에 「산거잡영(山居雜詠)」과 발문이 있으나, 초간본에는 간년 등이 분명하지 않다. 1980년 후손들이 중간본을 대본으로 『우계집(牛溪集)』과 함께 『파산세고(坡山世稿)』라는 이름으로 영인하였다.
권1에 ‘산거잡영’이라는 제목으로 시 56수, 술회(述懷) 80운(韻) 등 3수, 제현(諸賢)의 차운(次韻), 권2·3에 부록으로 행장·유사·묘지명·묘갈명·묘갈음기·만시·제문·봉안제문·축문·치제문(致祭文)·포증사실(褒贈事實), 청송당(聽松堂)의 서(序), 기·제현증문(諸賢贈文), 권4에 부편인 『절효선생유고』로 시 26수, 부록으로 묘지명·유사·봉안제문·축문 등이 수록되어 있다.
성수침은 문사(文詞)에 유의하지 않아 평소에 지은 시·부·사 등 많은 작품을 기록하지 않았다가, 만년에 기억을 더듬어 칠언절구 약간 편을 쓰고 스스로 ‘산거잡영’이라고 제목을 붙였다.
많지 않은 그의 시는 모두가 은일군자(隱逸君子)로서의 유한(幽閒)한 뜻과 청아한 시운(詩韻)을 볼 수가 있는데, 그의 고고한 기상이 진세에 물들지 않고 물외(物外)에 자적(自適)한 군자의 모습을 보는 듯하다. 부록에 이이(李珥)가 쓴 행장과 이황(李滉)이 쓴 묘갈명 및 제현의 찬문(贊文)이 있어서 성수침의 훌륭한 생애와 학문적 변모 및 인품 등을 알 수가 있다.
부편한 『절효선생유고』는 수십수에 지나지 않는 시가 수록되어 있지만, 성수종의 시재(詩才)를 이해하기에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