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3년 경부고속철도의 건설과 관련한 노선공사에 대한 조사로 알려지게 되었다.
그 해 11월에 75일간 충북대학교 선사문화연구소에서 조사해 유적의 양상이 상세히 밝혀졌다. 유적은 금강의 지류인 미호천(美湖川)유역의 충적대지상에 위치하며, 이곳은 청주-조치원간을 잇는 국도 남쪽에 해당된다.
3개의 가마터는 많이 파괴된 상태였으나 대체로 타원형이었다. 제2호 가마는 300×260㎝의 규모이고, 맨바닥에서 숯과 불탄 흙과 토기가 발견되었으며 별도의 부속 유구가 있었다. 이것은 민무늬토기시대의 가마터로서 예가 드문 것으로 평요구조에 토기는 520∼930℃의 온도로 구워진 것으로 밝혀졌다.
움터는 6기가 확인되었다. 115∼290㎝의 타원형으로 되어 있다. 민무늬토기시대의 집터 하나는 348×234㎝ 규모의 타원형 평면에 중간부위에 533×72㎝되는 곳에 재가 쌓인 불피운 자리가 있고, 기둥구멍은 11개가 일정한 간격으로 타원형을 이루고, 안쪽에 4개가 따로 더 있다.
구멍은 지름 5∼15㎝이고, 깊이는 7∼13.5㎝이다. 남쪽으로 문터가 있는 깊이 10㎝ 내외의 움집은 민무늬토기시대의 것이고, 고려시기의 움집터 3기도 조사되었다.
고려시대의 움집터는 제1호의 경우, 동서 길이 370㎝, 짧은 축의 길이 210㎝, 깊이는 76㎝이다. 네모에 가까운 타원형으로 기둥구멍이 있으며, 바닥은 모래층까지 파고 들어갔으나, 별다른 시설은 없다. 북측으로는 출입구로 보이는 계단이 하나 있고, 바닥 가운데에 불피운 흔적이 있다. 제2호에서는 청자잔이 발견되었다.
이 유적에서는 송국리형 토기와 역삼동식의 골아가리 토기, 붉은 간토기를 비롯한 많은 민무늬토기편들, 반달돌칼, 원반형석기, 돌도끼 조각, 돌살촉 등이 출토되었다. 제1·2호 가마터에서는 벼와 팥, 콩, 피의 낟알이 출토되어 당시의 농경은 혼합농경의 단계였던 것으로 여겨진다.
연대는 청동기시대의 유적이 방사성탄소연대로 서기 1200∼800년에 해당되고, 고려시대의 움집터는 12세기 초반으로 여겨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