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원 궁평리 유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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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오송읍에 있는 청동기시대 이후 집터·가마터·붉은간토기 관련 복합유적. 가마터·움집터.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차용걸 (충북대학교, 한국사)
  • 최종수정 2025년 08월 18일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정의

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오송읍에 있는 청동기시대 이후 집터·가마터·붉은간토기 관련 복합유적. 가마터·움집터.

개설

1993년 경부고속철도의 건설과 관련한 노선공사에 대한 조사로 알려지게 되었다.

그 해 11월에 75일간 충북대학교 선사문화연구소에서 조사해 유적의 양상이 상세히 밝혀졌다. 유적은 금강의 지류인 미호천(美湖川)유역의 충적대지상에 위치하며, 이곳은 청주-조치원간을 잇는 국도 남쪽에 해당된다.

내용

3개의 가마터(요지)는 많이 파괴된 상태였으나 대체로 타원형이었다. 제2호 가마는 300×260㎝의 규모이고, 맨바닥에서 과 불탄 흙과 토기가 발견되었으며 별도의 부속 유구가 있었다. 이것은 민무늬토기시대의 가마터로서 예가 드문 것으로 평요구조에 토기는 520∼930℃의 온도로 구워진 것으로 밝혀졌다.

터는 6기가 확인되었다. 115∼290㎝의 타원형으로 되어 있다. 민무늬토기시대의 집터 하나는 348×234㎝ 규모의 타원형 평면에 중간부위에 533×72㎝되는 곳에 재가 쌓인 불피운 자리가 있고, 기둥구멍은 11개가 일정한 간격으로 타원형을 이루고, 안쪽에 4개가 따로 더 있다.

구멍은 지름 5∼15㎝이고, 깊이는 7∼13.5㎝이다. 남쪽으로 문터가 있는 깊이 10㎝ 내외의 움집은 민무늬토기시대의 것이고, 고려시기의 움집터 3기도 조사되었다.

고려시대의 움집터는 제1호의 경우, 동서 길이 370㎝, 짧은 축의 길이 210㎝, 깊이는 76㎝이다. 네모에 가까운 타원형으로 기둥구멍이 있으며, 바닥은 모래층까지 파고 들어갔으나, 별다른 시설은 없다. 북측으로는 출입구로 보이는 계단이 하나 있고, 바닥 가운데에 불피운 흔적이 있다. 제2호에서는 청자이 발견되었다.

이 유적에서는 송국리형토기와 역삼동식의 골아가리토기, 붉은 간토기를 비롯한 많은 민무늬토기편들, 반달돌칼, 원반형석기, 돌도끼 조각, 돌살촉 등이 출토되었다. 제1·2호 가마터에서는 , , 의 낟알이 출토되어 당시의 농경은 혼합농경의 단계였던 것으로 여겨진다.

연대는 청동기시대의 유적이 방사성탄소 연대측정법으로 서기 1200∼800년에 해당되고, 고려시대의 움집터는 12세기 초반으로 여겨진다.

참고문헌

  • - 『청원궁평리청동기유적』(충북대학교선사문화연구소, 19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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