촌은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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촌은집
촌은집
한문학
문헌
조선시대 때의 시인, 유희경의 시가와 산문을 엮어 1707년에 간행한 시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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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시대 때의 시인, 유희경의 시가와 산문을 엮어 1707년에 간행한 시문집.
개설

3권 2책. 목활자본. 1628년 자신이 지은 시를 1권의 정리해둔 시집을 후손들이 저자 사후 운각(芸閣)에서 인출하고, 손자 자욱(自勖)이 선사본을 만들고 김창협(金昌協)이 선정하여 증손인 그 뒤 유태웅에 의해 1707년(숙종 33)에 간행되었다. 『촌은집』의 책머리에 김창협과 이경전(李慶全)의 서문이 있다. 권1 끝에는 이식(李植)이 쓴 발문이 실려 있다.

내용

『촌은집』은, 권1에 오언절구 13수, 육언절구 4수, 칠언절구 132수, 오언율시 50수, 오언배율 5수, 칠언율시 37수, 오언고시 3수 등 총 244수가 수록되어 있다. 권2에는 부록으로 유몽인(柳夢寅)이 쓴 유희경에 대한 전(傳)과 김창흡(金昌翕)이 쓴 묘표, 홍세태가 쓴 묘지명, 남학명(南鶴鳴)이 쓴 행록(行錄)과 『동주집(東州集)』에 있는 유사를 실었다.

권3에는 기(記)와 서(序)가 실려 있다. 유희경이 여러 사대부들과 창수(唱酬)한 시가 함께 기록되어 있다. 그 가운데 「침류대기(枕流臺記)」에는 임숙영(任叔英)·이수광(李睟光)·조우인(曺友仁)·김현성(金玄成)의 글이 있다. 침류대는 유희경의 집 뒤를 흐르는 시내에 돌을 쌓아 만든 대이다.

거기에서 여러 사대부들과 어울려 시를 지어 화답하였음을 말해주고 있다. 수창시는 임숙영이 서를 쓰고 임숙영과 차천로(車天輅)·이수광·신흠(申欽)·이달(李達)·유영길(柳永吉)·이안눌(李安訥)·이식·이민구(李敏求)·권필(權韠)·이정구(李廷龜) 등과 차운(次韻)한 시를 싣고 있다.

그 뒤에는 「수창시속록(酬唱詩續錄)」이 있다. 이식이 서를 쓰고 장유(張維)·김상헌(金尙憲)·최명길(崔鳴吉) 등 여러 사람의 시가 실렸다. 그리고 그 뒤에 「영국동림장도제영(寧國洞林莊圖題詠)」이라 하여 유노인에게 주는 시(贈劉老人)가 사연과 함께 실려 있다.

의의와 평가

각 시에 적힌 사연을 보면 85세가 된 유희경이 그림을 그려서 여러 문인을 찾아가 시를 얻고자 하여 시와 함께 글을 적어준 것임을 알 수 있다. 『촌은집』은 이처럼 시에만 치우쳐 있어 주로 문에 치중한 사대부들의 문집과 대비된다. 이는 시에만 전념한 유희경의 일생을 반영하는 것이다. 그의 시는 하층민으로서 한시를 창작한 여항문학(閭巷文學)의 효시가 되었다. 규장각도서에 있다.

참고문헌

『택당집(澤堂集)』
『어우야담(於于野譚)』
『농암집(農巖集)』
『삼연집(三淵集)』
『지봉집(芝峰集)』
『촌은집(村隱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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