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용외영(壯勇外營)의 후신이다. 조선 후기에 정조가 왕권을 강화하기 위하여 장용영을 설치하고, 1793년(정조 17) 1월에 그의 아버지 장헌세자(莊獻世子)의 현륭원(顯隆園)을 보호하기 위하여 수원에 화성(華城)을 축조하는 동시에 장용외영을 설치하여 방어하게 하였다.
그러나 정조가 승하하자 왕권이 극도로 약화되면서 1802년(순조 2) 1월에 장용영도 혁파되었는데, 이때 장용외영도 그 규모를 대폭 축소하여 총리영을 수원에 두고 화성의 관리·방어를 담당하게 하였다.
관원으로는 사(使 : 수원유수가 겸임) 1인, 중군(中軍) 1인, 종사관(從事官 : 수원판관 겸임) 1인, 별효장(別驍將) 2인, 파총(把摠 : 진위·용인·안산·과천·시흥의 수령과 평신첨사가 예겸, 이 밖에 6인은 무관을 지낸 자 중에서 차출) 12인, 척후장(斥堠將 : 영화도찰방이 겸임) 1인, 초관(哨官) 25인, 교련관(敎鍊官) 8인, 지구관(知彀官) 10인, 별군관(別軍官) 100인, 수첩군관(守堞軍官) 12인, 별효사(別驍士) 200인으로 편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