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규남 ()

과학기술
인물
문교부 과학교육국장, 서울대학교 총장, 문교부장관, 한국과학기술원 설립준비위원장 등을 역임하며 한국과학계를 위해 힘쓴 과학자 · 관료.
이칭
동운(東雲)
인물/근현대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898년(고종 35)
사망 연도
1992년
본관
경주(慶州)
목차
정의
문교부 과학교육국장, 서울대학교 총장, 문교부장관, 한국과학기술원 설립준비위원장 등을 역임하며 한국과학계를 위해 힘쓴 과학자 · 관료.
생애 및 활동사항

본관은 경주(慶州). 호는 동운(東雲). 서울 출생. 1926년 연희전문학교 수물과(數物科)를 졸업하고 학교에서 물리학을 가르치던 베커(Becker,J.) 교수의 추천에 의하여 이듬해 미국 오하이오주의 웨슬리안대학에 유학하여 1929년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다.

이어 미시간대학으로 옮겨 물리학을 전공, 1933년 이학박사학위를 받았다. 바로 귀국하여 모교에서 조교수, 교수를 거치며 물리학을 국내에 보급하는 일에 전념하였다.

광복과 함께 경성대학 이공학부 부장대리로 자리를 옮겼고, 서울대학교로 개편되면서 동대학 교수가 되어 초기의 물리학교육에 진력하였다. 특히 광복 당시 한국인 가운데 물리학에서 박사학위를 가진 사람은 단 2명뿐이었고, 그 가운데도 한국 최초의 박사학위 취득자였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물리학계의 지도자로 부상하였다.

1952년 피난수도 부산에 있던 서울대학교 본부에서 한국물리학회 창립대회가 열리자 당시 서울대학교 총장이었던 그는 첫 물리학회 회장에 선출되어 1960년까지 일을 맡아보았다.

광복과 함께 과학계의 인력이 거의 없던 풍토에서 바로 과학행정에도 종사하게 되었고, 1948년 문교부 초대 과학교육국장을 거쳐 1950년 문교부차관, 1951년 서울대학교 총장, 이어 1956년 문교부장관을 역임하며 과학행정의 앞장을 섰다.

특히 1949년 10월 과학교육국장 재직시 제1회 과학전람회를 개최하였고, 이것이 계기가 되어 미국의 지원 아래 1950년 과학기술원이 설립되었다. 그러나 그가 주역을 담당하였던 최초의 종합과학기술연구기관인 과학기술원은 6·25전쟁 때 없어져 무위로 끝나고 말았다. 그러나 그 뒤 1964년에는 한국과학기술원(KIST)의 설립준비위원장이 되어 주도적 활약을 하였다.

그 뒤에도 경제과학심의회 상임위원(1964), 학술원 종신회원(1966), 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 명예회장(1967) 등을 거치며 한국과학계의 대부 구실을 하였다. 저서로는 『원자』·『당신과 원자력』·『동운논집(東雲論集)』 등이 있다.

• 본 항목의 내용은 관계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거쳐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단,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미디어ID
저작권
촬영지
주제어
사진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