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만혁

  • 역사
  • 인물
  • 개항기
  • 현대
일제강점기 때, 독립단 군사부장, 광한단 파견대장 등을 역임하며 군자금 모금 및 일제 기관 파괴 활동을 전개한 독립운동가.
이칭
  • 이칭만혁(萬赫)
인물/근현대 인물
  • 사망 연도1974년
  • 성별남성
  • 출생 연도1887년(고종 24)
  • 출생지평안북도 개천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신재홍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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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일제강점기 때, 독립단 군사부장, 광한단 파견대장 등을 역임하며 군자금 모금 및 일제 기관 파괴 활동을 전개한 독립운동가.

생애 및 활동사항

일명 만혁(萬赫). 평안북도 개천 출신. 1919년 3·1운동에 참가하고 독립단을 조직, 군자금을 모금하여 만주에서 결성된 한족회(韓族會)에 송금하였다. 이 해 5월 만주로 건너가 유하현(柳河縣)에 설립된 신흥무관학교(新興武官學校)에서 수학한 뒤 독립단에 가입, 독립단 군사부장으로서 항일전투에 참전하였다.

1920년 국내로 진입하여 안주(安州)의 일본경찰 주재소를 습격, 일본경찰 1명을 사살하였고, 다시 만주로 가 광한단(光韓團)에 입단하였다. 이 해 10월 광한단 파견대장으로 현익철(玄益哲) 등과 함께 국내에 들어와 평양에 잠복하면서 군자금모금, 일제식민 통치기관 습격 등의 활동을 하다가 11월 일본경찰에 붙잡혔다.

1921년 4월 대구복심법원에서 징역 3년을 선고받았으며, 1924년 일본경찰의 감시를 피하여 만주로 건너갔으나 일제의 봉천영사관(奉天領事館) 경찰에 붙잡혀 추방명령을 받고 귀국하였다. 귀국 후에도 여러 차례 일본경찰에 붙잡혀 옥고를 겪었다.

상훈과 추모

1963년 대통령표창, 1977년 건국포장, 1990년 애국장이 추서되었다.

참고문헌

  • - 『독립유공자공훈록』4(국가보훈처, 1987)

  • - 『한국독립사』(김승학, 독립문화사, 19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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