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주 최명길 신도비

  • 예술·체육
  • 유적
  • 조선 후기
  • 시도문화유산
충청북도 청주시 청원구 북이면에 있는 조선시대 명신 최명길의 신도비.
시도문화유산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이완우 (원광대학교, 미술사)
  • 최종수정 2024년 07월 05일
최명길 신도비 미디어 정보

최명길 신도비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정의

충청북도 청주시 청원구 북이면에 있는 조선시대 명신 최명길의 신도비.

내용

1702년(숙종 28) 건립. 1980년 충청북도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 비신 높이 4.2m.

비신(碑身) 위에 팔작지붕 모양의 덮개돌을 얹은 일반 형식인데, 1980년 비의 보호를 위해 비각(碑閣)을 세웠으나 비문은 거의 풍화되어 거의 판독되지 않는다. 비문은 박세당(朴世堂)이 짓고 글씨는 최창대(崔昌大)가 썼다.

비문에는 1605년(선조 38)에 문과에 급제한 뒤 승문원을 거쳐 예문관(典籍)을 지냈고, 그러다가 1614년(광해군 6) 폐모(廢母)사건에 연루되어 파면되었으며, 그 뒤 인조반정에 가담하여 다시 관계에 나아갔던 그의 생애와 주요 활동이 적혀있다. 특히 정묘호란 때 국왕 인조를 강화도로 호종(扈從)하는 한편 청과의 강화(講和)를 주장했다거나 병자호란 때 청과의 평화 관계를 모색할 수밖에 없음을 직시하고 홀로 청나라 진영에 들어가 화의(和議) 교섭을 성사시키는 등 현실적 외교정책을 주장한 면모가 잘 기술되어 있다.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콘텐츠 이용 안내

콘텐츠 수정 요청

필수 입력 항목입니다.

주제
0 / 500자
근거 자료
첨부된 파일이 없습니다
파일선택

최대 5개, 전체 용량 30Mb 첨부 가능

작성 완료되었습니다.

작성글 확인

다운로드가 완료되었습니다.

다운로드할 미디어를 선택해주세요.

모든 필수 항목을 입력해주세요.

다운로드할 미디어가 선택되지 않았습니다.

다운로드 중 오류가 발생했습니다.

미디어 다운로드

  • 이용 목적을 상세히 작성하여 주세요.
    서비스 개선에 반영하도록 하겠습니다.

출처 표기 : [사진명]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필수 입력 항목입니다.

이용목적